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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신현승 칼럼ㅣ자유기고가예전에 별 셋이라는 가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노래 잘했고 출연도 많이 했었는데, 그래도 그 노래 실력이나 비중에 비하면 왜인지 대접은 조금 아쉬운 느낌의 가수였다.우리나라에도 별 셋이라는 그룹이 있다. 삼성. 대한민국 최대의 기업이며, 대한민국의 내수출시장의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 그 기업의 회장이었던 이건희씨가 별세하셨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이고 별다를 것도 없는 것이지만, 어째 TV에 나온 사람들은 실제로는 뭔가 더 감정을 자아내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가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나 현대의 정주영 회장 만큼의 인생역정을 겪은 것도 아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들을 온 몸으로 부딪혀가며 역경을 이겨내고 만들어냈지만, 이건희 같은 경우는 그 승계자의 위치였기에 창업자들의 전설 같은 스토리와 감동은 없다. 소위 말하는 재벌 2세대의 선두주자이며 대표격인 사람이 이건희인 것이다.젊은 지식인들 중에는 그러한 이유로 이건희 회장을 폄하하고는 하고, 그 일부는 타당성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이건희씨가 이병철씨로부터 회사를 승계받고 그대로 안주하거나 개인의 안위만을 탐했다면, 그는 그저 흔한 ‘재벌 2세’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삼성이라는 그룹의 모습을 보라. 이병철 회장은 물론 대단한 사람이고, 그 창업의 업적을 따를 수야 없겠지만, 그 이병철 회장이 이루어놓고 간 것을 몇 십 배 이상 키워놓은 사람이 이건희 회장이다.가까운 과거까지 한국 제품은 세계 시장에서 ‘2류, 3류 제품’ 또는 ‘싼 맛에 쓰는 제품’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흐름을 바꾼 사람도 이건희 회장이다. 그가 아무리 거대한 대기업의 총수였다고는 하지만, 세상의 흐름에 비한다면 강물 위에 떠 있는 나뭇잎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세상의 흐름을 바꾸는 모험을 감행했고, 그것은 큰 성공을 거두어서 오늘날의 삼성의 모습을 있게 한 것이다. 지금 세계시장에서 삼성을 포함해 모든 한국 제품이 ‘3류제품’으로 통하지 않게 된 그 배경에는 바로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新經營) 혁신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는 삼성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인 것이겠지만, 그 반동으로 인해 한국 사회 전체에 큰 이익을 가져다 준 것이다. 90년대 이후 중국이 크게 치고 올라오는데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어렵게나마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국가 브랜드 가치에 있다. 국가의 브랜드 가치. 그것은 돈으로 또는 단시간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눈 앞에 독일제 제품과 중국제 제품이 있다면 무엇을 고를지 거의 맞출 수 있다. 그것이 국가 브랜드 가치다.자신의 삼성 그룹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국가에도 큰 이익을 가져다 준 사람이기에, 그를 단순히 흔한 재벌 2세로만 생각하고 싶지 않다.이 사회에서는 언제인가부터 ‘부의 축적’을 악(惡)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분은 수긍이 가는 것도 사실이나, 지나친 이분법적인 사고는 공산주의와 별다를 것이 없다. 법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렇게 하면 그만이다. 삼성이 법 위에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이미 기업 총수들이 법망에 구속되고 하는 일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정치인들에게 좋은 먹잇감일 뿐이다. 그 자리는 위태로운 왕의 입장과 다를 것이 없어서, 오히려 많은 자유의 제약이 뒤따르는 자리인 것이다. 그리고, 원래 창업이나 공성(攻城)보다 수성(守成)이 어려운 법이다. 이건희씨의 인생을 가까이서 보지 않았으면서 함부로 폄하하는 행동은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 분명 삼성 입장에서는 최고의 수성을 해냈으며, 세(勢)를 크게 키워낸 훌륭한 리더였다.한 편으로 생각하면, 참으로 허무하기도 하다. 그 많은 돈 거의 써보지도 못하고 가는 것 보면, 정말 인생무상(人生無常)이다.TV에 별 셋도 출연하지 않고, 하늘의 별도 잘 안 보이는 요즘이지만, 이병철 그리고 이건희가 띄워놓은 별 셋이 어떠한 행보를 보일지 궁금해진다.

칼럼 | 매일경기 | 2020-10-26 15:07

ㅣ최제영 大記者 칼럼ㅣ사람이 태어나면서 제일 먼저 붙여주는 것이 바로 이름이다. 한번 이름을 지으면 평생을 가기 때문에 신중해 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유명한 작명가를 찾아 이름을 짓기도 한다.음양오행을 참고해 완성된 이름값은 작명가의 유명세에 따라 적게는 몇 만 원에서 많게는 몇 백만 원을 줘야하는 경우도 있다.이름은 사람뿐만 아니라 회사나 식당 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름이 좋아야 기업이 흥하고 장사도 잘 된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이름이 촌스럽거나 천박하다는 이유로 이름을 개명하기도 한다. 법원에서도 행복 추구권 보장 차원에서 범죄와 관련이 없는 경우라면 원칙적으로 개명을 허가해주는 추세라고 한다. 실제로 평소 알던 지인들로부터 이름을 바꿨다는 얘기는 심심치 않게 듣곤 한다.될수있으면 개명한 이름을 불러주려고 노력도 한다. 필자의 이름은 혼동하기 쉽다. '최제영'이라 부르면 십중팔구 '최재영'으로 기재하는 경우가 많다.그래서 꼭 제주도 할 때 '제'라는 말을 빠짐없이 전하고 있다. 이름을 최재영으로 바꿀 생각은 전혀 없다.부모님과 큰 누님이 합작해서 지어준 이름인데다 부드럽고 고상하며 그리 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안산 4호선 전철 역 이름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얼마 전 안산시 인터넷 자유 게시판을 우연히 들여다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눈에 딱 들어오는 내용이 있었다. 2017년부터 안산에 살고 있다는 시민의 글이었는데, '반월역'에 대한 의견이었다. '반월공단과 멀리 떨어져 있는데 왜 반월이라는 이름을 붙였냐'는 주장이었다.처음에는 반월역 주변에 공단이 있는 줄 착각을 했다고도 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4호선 전철역은 변경되거나 추진 중에 있는 역이 있다. 우선은 '공단역'이 '초지역'으로 바뀌었다. 공단이라는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데다, 공단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였다.'신길온천역'도 조만간 바뀔 예정이라고 한다. 온천이 없는 온천역이 현실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유령의 역이라면 바꾸는 것은 당연하다.'한대앞역' 역시 학교와는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한대앞역은 안산에 소재한 유수한 학교라는 점에서 이해하는 측면이 있다.서울에서도 전철 역 이름을 바꾼 사례는 많다. 한편으로 전철역 이름을 지을 때 서로 경쟁이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홍보 효과가 대단하기 때문이다.역 이름을 두개로 표시하는 경우도 많다. 2024이면 '신안산선'도 개통되는데 벌써부터 역 이름이 궁금해지기도 한다.오늘따라 안산 중심을 가로 지르는 4호선 역 이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칼럼 | 매일경기 | 2020-10-26 15:06

ㅣ서영숙의 미술세상ㅣ서영숙 안산환경미술 협회 회장”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D'où Venons Nous / Que Sommes Nous / Où Allons Nous”) 는 신비한 푸른 바탕에 낯선 이방인들의 모습을 빌려 삶과 죽음에 대한 서사를 펼치고 있는 폴 고갱(Eugne Henri Paul Gauguin, 1848.6.7 ~ 1903.5.8)의 작품이다. 1897년 남태평양의 타히티에서 고독과 빈곤, 지병에 시달리던 고갱이 사랑하는 딸 알린느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자살까지 결심하며 죽기 전에 남기고 싶어 했던 작품이다.죽기 전 머릿속에 있는 작품을 옮기고 죽겠다는 일념으로 한 달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림에 몰두해 완성한 이 작품은 139 × 374.7㎝에 달하는 대작이다.이 작품 속에는 사람이 태어나고 살고 죽는 이야기가 모두 있다.고개를 돌린 갓난아이, 무심한 듯 보이는 사람들, 늙은 육체를 저주하는 듯 머리를 감싼 노인, 그리고 캔버스 중간을 양쪽으로 가르는 동시에 기둥처럼 서 있는, 선악과를 따는 인간의 모습. 수많은 상징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고갱은 친구 몽프레에게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12월 한 달 동안 유작으로 대작을 그리기로 했네. 미친 듯이 그렸네! 사람들은 이 작품이 미완성이라고 하겠지. 그러나 이 작품은 내가 지금껏 그린 그것 중에서 최고이며 앞으로도 이 그림과 비교할만한 작품은 그릴 자신이 없네 작품구상이 워낙 뚜렷해 어느덧 생동감이 느껴지고 있네 그림 상단 양쪽 귀퉁이는 연노랑 색으로 칠했어. 위의 양 귀퉁이가 손상된 프레스코 벽화처럼 말이야. 나는 이것을 걸작으로 본다네 “그는 이 작품에서 삶과 죽음, 사랑과 믿음 등 고갱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본질과 인간의 참모습을 형상화하려고 했다.고갱이 한평생,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방랑하며 찾고자 했던 것은 바로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러하다. 본질과 실체에 다가갈수록 삶은 충만해지고 꽃피우겠지만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인생의 본질에서 멀어진다면 공허한 절망만이 남을 뿐이다.낙엽이 물들고 떨어지는 이 가을 생각해 보게 된다.나는 누구이고 어디로 갈 것인가?많은 물음과 생각 속에 나 자신을 찾아갈 작품을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일까?이 삶이 본질에 충실한 것일까?고민이 깊어가는 가을이다.

칼럼 | 매일경기 | 2020-10-26 15:05

ㅣ김영희의 미술세계ㅣ김영희 단원작가회회장쌍검대무란 무예의 한 종류로, 두 사람이 양손에 칼을 쥐고 서로 어울려 춤을 추는 것을 이른다. 조선 후기 들어 그 인기가 대단했는데, 현대인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다산 정약용은 이러한 감상을 남겼다.‘왼쪽으로 찌르고 오른쪽으로 찌르고 서로 닿지를 않는구나. 치고 베고 뛰어오르고 솟구치니 소름이 돋네.’신윤복의 쌍검대무는 조선 후기의 양반 문화를 카메라로 촬영한 듯이 담아낸 그림이다. 세도가에서 많은 돈을 들여 쌍검대무를 추는 무희와 흥을 돋우는 악공들을 불러놓고 즐기는 연회의 한 장면을 포착해냈다. 이 그림은 특별한 배경 없이 검무가 펼쳐지는 광경을 강조하고 있다. 주변인들의 채도가 낮은 색상과 달리, 칼춤을 추고 있는 기녀들의 의상은 선명하게 붉고 푸른 빛의 강렬한 교차로 화면의 중심을 잡고 있다. 그녀들의 시선과 동세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흐르면서 검무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한껏 고조되는 음률 속에서 관객들은 넋을 놓을 듯이 순간의 예술에 몰입하고 있다. 그림을 좀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등장인물들을 둘러싼 여러 컨텍스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림의 좌측, 돗자리 위의 등받이에 기댄 사람은 자주색 허리띠를 맨 것으로 보아 높은 벼슬자리에 있는 듯하다. 현란한 춤에 빠져들고 있는지 부채를 거꾸로 잡으며 몸을 앞으로 일으키는 모습이다. 그의 위에는 은근한 표정으로 몸을 아래로 향하는 양반이 보인다. 그림의 좌상단에 무릎을 꿇고 앉은 자기 아들을 자주색 허리띠 양반에게 소개하려 틈을 엿보고 있다. 그림의 상단, 초립을 쓴 젊은이는 주변의 아름다운 기녀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림 가장 아래에 늘어앉은 여섯 악공 중 가장 오른쪽의 북재비는 차림새가 특출난 것이 그들 중 대장인 듯하다. 그림의 좌하단에 앉아있는 선비는 공연을 주최한 주인이다. 흥에 도취된 듯 얼굴을 가리는 차면선을 내려놓고 수염을 쓰다듬고 있다. 그림 우상단의 몸종은 긴 곰방대를 들고 있다. 필요로 하는 사람에 가져다주기 위함인데, 쌍검대무를 바라보느라 누가 불러도 전혀 모르고 있을 듯한 표정이다. 이러한 스토리가 눈에 들어오면, 그의 그림은 더욱더 흥미롭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속세의 풍류에 익숙한 화가가, 그 문화를 긍정하며 겪은 바를 친근하게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이러한 신윤복의 화풍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특징은, 무엇보다도 주인공으로 기녀들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웅대한 산수화를 통해 고아한 관념을 현현하던 선비들의 그림과 달리, 그의 그림에서는 아무도 귀하게 여기지 않던 기생들의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냈다. 남성과 사대부 중심의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예술의 영역을 창조해 나간 것이다. 어쩌면 조선 회화사에서 유미주의가 가장 강력하게 표출되어 존재감을 드러낸 순간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악사가 자아내는 흥겨운 선율이 들려오는 듯, 쌍검대무를 선보이는 무용수의 자태가 어른거리는 듯, 시대를 뛰어넘고 신윤복의 감성이 가슴에 스며든다. 그 김에 미술관 관람을 계획하는 오늘이다. 외출이 줄어들며 굳어가던 생각의 틀을 깨고, 예술 속에 펼쳐진 따스함과 애정에 젖어보련다. 말간 햇빛에 나뭇잎이 유난히 빨갛게 물드는 가을날이다.

칼럼 | 매일경기 | 2020-10-26 15:04

ㅣ서평ㅣ신도성 시민기자12년 전 10월의 이맘때에 아내가 선물로 주었던 책을 최근에 다시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에 찾지 못했던 부분도 많고 새로운 감흥을 주거나 처음과 다른 각도에서 이해되는 부분도 적지 않기에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책을 정독했다.마음의 배어떤 돌도 꽃처럼 물 위에 뜰 수 없다.하지만 만일 그대가 배를 가지고 있다면그 배는 수십 킬로그램의 돌을 실어도 물 위에 뜰 것이다.(본문 중에서)간략한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사채를 쓰면서 늙고 병든 어머니를 봉양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직장 다니던 소설의 주인공 한바로는 어느 날 할아버지의 재산 일부를 상속받을 수도 있다는 통보를 받으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그런데 상속전담 변호사를 통해서 받은 안내문에는 R____+A____=___y 에 정확한 단어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며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할아버지의 사업장이 있었던 미국 시카고로 건너가서 그분(할아버지)의 흔적을 찾는다.마치 난수표를 해석하는 듯이 어려운 과정에서 한바로는 주변 분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문제를 풀지 못해서 상속재산을 물려받는데 실패하였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할아버지의 스펀지 쿠션이 주는 마음의 위로를 느끼게 되면서 물질적인 풍요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상의 행복을 발견하게 된다.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이 반복되는 하루 또 하루와 매달 따박따박 날라 들어오는(주인공은 이를 ‘지옥의 메시지’라고 부르는) 카드요금청구 문자메시지 등 도저히 희망이라고는 바라볼 수 없는 깜깜한 현실이기에 우리도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한바로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듯이 주어진 돌파구를 해결하기 위해서 미국까지 건너가서 할아버지의 흔적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마음쿠션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는 어떤 일을 직면하게 된다면 마치 쿠션 안에 들어있는 스펀지들이 그렇듯이 차분하고 평온하게 대처법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저자는 소설에서 어쩌면 이상형의 인생을 꿈꾸었던 것 같다. 보이는 현실 저 너머에 보이지 않는 이상형의 다른 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그리고 있다. 마치 비행기를 타면 구름 위의 높은 곳에는 태양이 찬란히 빛나고 있었건만, 그 아래의 세상은 폭우와 광풍 천둥 번개로 꽉 차있다는 내용을 말하고 싶어 했다.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우리가 강한 비와 미친 바람을 조절할 수가 없다면 이동하여 구름 위 찬란하게 태양이 빛나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이 책에서 마음을 압도했던 것은 헤라클래스의 이야기이다. 한바로가 할아버지 지인 민박사 부부가 전해준 이야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비유로 소개하고 있다.좁은 길을 지나던 헤라클래스가 사과 크기의 이상한 물건을 발로 차니 수박 크기로 커졌다. 흥분한 헤라클래스가 힘껏 찼더니 바위만큼 되었고 열이 올라서 쇠몽둥이로 내리치니 두 배로 커져 좁은 길을 꽉 막았다는 것이다.그때 아테네 여신이 나타나서 산더미만한 이상한 물체에 노래를 부르니 순식간에 처음의 사과크기로 작아졌다는 것이다. 여신은 헤라클래스에게 이 물체가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같아서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두면 작아지지만 반면에 건드릴수록 더욱 커진다고 말한다.분노는 조금 참으면 금방 마음속에서 사라지지만 순간을 이기지 못해 밖으로 표출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것이다.“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우리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폴 발레리의 말이다.필자는 여기에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계란 얘기인데 가르침이 결코 적지 않다.“스스로 깨고 나오면 병아리, 남이 깨어 주면 후라이”고단한 삶을 자유롭게 하는 ‘쿠션’저자 조신영발행일 2008년 7월 21일발행처 비젼과 리더십

칼럼 | 매일경기 | 2020-10-26 15:02

ㅣ한정규칼럼ㅣ한정규 문학평론가인간, 그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이, 관심을 둔다고 토마스 홉스 선생이 말했다. 철학자 토마스 홉스가 인간이란 종족은 폭력적이고 경쟁심이 강해서 끊임없이 싸움을 벌이며 오직 저만의 이익에만 집착한다고 했다.그런 홉스가 길거리에서 거지에게 돈을 줬다. 그것을 보고 왜 돈을 준 것이냐 물었다. 그러자 홉스는 “난 거지를 도우려고 돈을 준 것이 아니고 인간의 빈곤, 가난함을 보고 고통을 느끼는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돈을 준 것뿐이오.”“그렇다면 빈곤, 가난한 사람을 보면 왜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까? 그럴만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그렇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무슨 이유, 그런 건 없습니다.”또 스페인 출신 철학자 조지산타야 그도 인간이 자비와 친절을 베풀고 싶은 충동이 순간적으로 난다고 했다.조지산타야는 자신이 쓴 책에 ‘인간이 자비와 친절을 베풀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 있지만 불안정하다’며 ‘이기적인 인간성이 뿌리 깊이 박혀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했다.모든 인간의 동기는 궁극적으로 이기적이며 순전히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공격성향은 원초적이며 본래부터 존재하는 본능적인 성격이라고 했다.또 로버트 아드리와 콘라드 로렌즈 두 작가는 약탈적인 행동을 하는 동물들을 조사한 뒤 밝히기를 인간 또한 기본적으로 약탈자이며 영토를 차지하려는 본능 때문에 싸움을 벌인다고 했다. 달라이라마와 달리 인간성을 비관적으로 보았다. 그런 그들도 점차 변하기 시작 인간은 처음부터 공격성향을 타고 난 것이 아니며 폭력적인 행동은 생물학적 환경적 사회적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에 대해 밝힌 세비유 선언에 대해 이야기 해줄 수 있을까요?”“그럼요. 세비유 선언은 1986년 발표된 폭력에 관해 전 세계 최고 과학자 20여명이 조사연구 발표했던 선언이죠.”“세비유 선언에서 인간이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에 대해 인정을 했지요.”“그럼 인간이 폭력적인 성격을 타고 났다는 겁니까?”“그것이 아니라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성향을 타고 났다고 말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봅니다. 다만 삶속에서 생겨나는 것이지만 인간의 신경생리기관에는 폭력적인 행동을 강요하는 요소는 없다는 겁니다.”현대 과학자의 견해로는 인간이 공격성을 타고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선천적으로 이기적이기도 않다는 점이다.토마스 홉스 등 초기과학자들은 인간이 생존 본능 때문에 적대감과 공격성을 갖게 돼 폭력적이고 경쟁심이 강해서 끊임없이 싸움을 벌이며 오직 저만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다는 견해였다. 그에 대해 세비유 선언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을 포함한 C다니엘 벳슨, 낸시 아이젠버그, 윌슨 등은 초기 과학자의 견해와는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았다.뿐만 아니라 그들 과학자들은 사회적으로 치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 병에 걸리고 스스로를 불행하게 느끼고 스트레스도 잘 받는다는 것을 밝혔다.인간이 지닌 타고난 성품과 행태에 대해서 과학자들의 견해를 놓고 조사 토론을 한바 인간의 본성은 악이 아닌 선만이 존재했으며 살면서 갖게 된 것이 악으로 그 악이 세월과 함께 성장했음을 일 수 있었다.선이 악으로 변하는 데는 많은 요인들이 있으며 그중 가장 크게 영향을 준 것이 주변 환경임을 알 수 있었다.

칼럼 | 매일경기 | 2020-10-26 15:01

ㅣ대동세상ㅣ서한석 경기테크노파크 전략사업본부장국정감사가 한창이다. 감사 대상기관은 일년동안 진행한 일을 평가받는다. 계획과 전략이 잘 수립되었는지 검증받는다. 업무와 집행의 타당성과 효과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리고 부실하거나 잘못이 있다면 호된 지적과 질타를 받게 된다. 혹 위법한 사안이 생기면 책임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대체로 이와같은 과정이 국정 감사라는 제도의 개략적인 내용이다. 국민 세금을 사용하는 기관과 조직이 당연히 거쳐야 할 필수적 과제이다. 국민 혈세를 어떻게 사용하고 국리민복을 어떻게 증진하였는지 언론과 자료를 통하여 여실하게 드러나게 된다. 공인들이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평가할 자료가 많다. 국정감사로 국민들은 국정 운영을 자세히 알 수가 있다. 이렇게 좋은 제도는 온 국민이 칭찬의 박수를 받을 일이다.그러나 코로나 19로 2019년보다 11% 줄어든 643개 기관에 대한 2020 국정감사는 국민의 삶과 밀접한 것 같지 않다. 현재의 국정감사는 피로할 뿐이다. 정책감사는 실종되고 정쟁만 난무하는 모습은 여전하다. 올해도 부실 국감, 맹탕 국감이란 촌평을 벗어나기 힘든 것 같다.그 많은 피감기관을 10월 7일부터 26일까지 20일 동안 정책 감사한다는 것이 애당초 무리이기도 하다. 산더미 같은 자료를 충분히 검토할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국정감사를 통해 국민의 삶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가늠하기가 힘들다.더욱이 열악한 조건에 300인의 국회의원들이 열심히 정책제언을 준비한다손 치더라도 국민들에게 인정받고 주목받기가 힘들다. 언론이 국민 이목이 쏠려있는 정치 쟁점 사안을 주로 다루기 때문이다. 국토위는 수도권 집값, 국방위는 공무원 피살, 법사위는 검찰청 공수처와 라임-옵티머스 사태, 기획위는 공정경제 3법과 같은 것들이다.그리고 여야 대권후보에 올라있는 인사가 소속된 기관의 감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여야간 논쟁거리는 국감의 핵심을 흐리게 한다. 정쟁은 국민의 삶과 별 연관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소속된 정당의 정치적 입지 확보가 주요한 목적이기 때문이다.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격돌이 벌어지면 국정감사는 산으로 올라간다. 감사장의 국회의원들은 언론에 나오기 위해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국정감사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채 표류하기가 쉽다. 이와 같은 현상을 2020년 국정감사에서도 발견되는 한 실망스러운 결과를 예상할 수가 있다.한편 국정감사를 받는 피감기관 입장은 언론에 주목받기보다 대체로 피해가길 원한다. 왜냐하면 언론에 노출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로 국감의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방어적으로 준비한다. 국회의원의 요청 자료도 두리뭉실하게 작성해서 제출하기 일쑤다. 이러한 태도가 국정감사에 대응하는 피감기관의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갈 궁리만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볼 수 있다.국정감사가 국민의 삶과 직결된 좋은 제도라고 한다면 여야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국정감사에서는 정쟁을 삼가야 한다. 감사기간을 늘리거나 국회 회기내 상시감사를 해야 한다. 정책감사와 대안을 제시하여 피감기관의 공공적 역할을 발전시켜야 한다.국민의 삶과 밀접한 핵심 사안을 적용하기 위한 실제적 연구를 병행하여야 한다. 국정감사의 품격을 높여 언론과 국민의 관심을 변화 발전시켜야 한다. 이렇게 국정감사 본연의 의미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이해득실과 계산을 멀리하는 것이 좋다. 기존의 관행을 타파하고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국정감사가 공격하고 정쟁하는 소비적인 것이 아니었으면 한다. 피감기관이 잘한 것은 격려하고 잘못된 것은 정확하게 지적하는 생산적인 국정감사가 되길 바란다.

칼럼 | 매일경기 | 2020-10-26 15:00

ㅣ책으로 들여다 보는 세상ㅣ수필가/안산문인협회 전 사무국장 황영주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니 늘 인생의 절반을 사는 기분이다. 서른에는 육십, 사십에는 팔십이란 나이가 그저 아득하더니 어느새 백세를 들먹이게 된다. 정말 그 나이까지 살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 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깊다. 그 생각을 다듬는 데 도움이 된 책이 바로《100 인생 그림책》(하이케 팔러 글, 발레리오 비달리 그림, 김서정 옮김, 사계절)이다.글쓴이는 갓 태어난 조카를 보곤 이 책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침대에 누워 세상을 바라보는 빛나는 눈. 그 앞에 펼쳐질 굉장한 일들을 생각하니 반은 부러운 마음이 들고 또 그 애가 겪어야 할 고통스러운 일들 때문에 마음의 반은 아프기도 했다.몇 주 지난 뒤 다시 만난 조카는 벌써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은 자극이 뭔지 알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심히 넘길 것들을 헤아리며 어른이 되면 세상일에 너무 익숙해져서 큰 산이라든지 보름달이라든지 사랑 같은 것의 위대함을 당연히 여기게 된다. 그게 얼마나 쓸쓸한 일인지 아는 나는 다른가. 그렇지 않다.비록 딛고 선 자리가 달라서 뭔가를 배운 나이는 다르지만 책 속의 모습은 그대로 나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걸 배웠고 세상이 지루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뽀뽀와 키스를 구별하게 됐고 산다는 건 정말 스트레스 넘치는 일이지만 누군가 나를 끌어주고 나는 누군가를 밀어주는 즐거움도 안다.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게 어떤 기분인지 진짜로 느꼈고 밤새 한 번도 깨지 않고 잔다는 게 얼마나 호사를 누리는 일인지도 실감했다. 설탕을 한 숟가락 넣어야 삼킬 수 있었던 쓰디쓴 커피의 맛을 음미하게 된 순간이 오기도 했다.그 많은 경험 끝에 나는 마침표가 된 것 같다. 세상이 궁금하지 않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시들하다. 이런 마음에 무슨 시가 오겠나. 그래서 94세의 작가가 한 말이 아프게 닿는다. “나는 종종 내가 옛날의 그 어린 여자 아이라는 기분이 들어요. 살면서 뭔가를 도대체 배우기는 했는지. 그런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진답니다.”배운 게 없다는 깨달음이 그 사람을 항상 깨어 있게 했고 세상일에 귀를 기울이게 했던 거다. 글쓴이도 자신이 아직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많다는 걸 인정하고 ‘살면서 뭘 배웠는지를’ 끊임없이 물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운명적인 사건을 겪었던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를 깨닫고 놀라곤 했다. 더구나 어려운 시절을 견딘 사람들이 선한 것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인생에 대해 기뻐하는 일을 덜 힘들어 한다는 의미로 글쓴이는 이를 행복의 상대성으로 봤다. 삶은 꽤 공정한 셈이라는 말에 위로가 되는 건 뭔지.책엔 이렇게 67세에 세상을 발견하고 74세에 생전 처음으로 자기랑 딱 어울리는 사람을 만났다는 고백이 있다. 7살에 모든 걸 꼼꼼히 들여다본다는 글 앞에서 작아진 가슴이 100세가 빈 칸으로 남아있는 이유를 생각하며 겸손해진다. 그동안 세상을 안다고 건방을 떨었던 게 마냥 부끄럽다.그가 차려낸 100장면으로 보는 인생의 맛을 충분히 즐기고 나니 새로운 맛을 낼 뭔가가 기대된다. 나를 담은, 내가 써가는 인생이라는 책에 감탄사와 물음표가 넘치면 좋겠다. 이제 그만 무심해지자고 마음먹으며 가을 속으로 발길을 옮긴다.

칼럼 | 매일경기 | 2020-10-19 14:45

ㅣ신현승 칼럼ㅣ자유기고가가을은 더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 깊어지고 있음은 그 중심부로 향하고 있다는 의미일텐데, 그 중심부에는 가을의 중심이 아닌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사계(四季)를 가만히 생각해 보자. 생명이 움트고 자라고 활동하는 봄 여름에 비해 가을과 겨울은 생명을 거두어 들이는 계절이다. 가을과 겨울 중에도 겨울은 그야말로 준 죽음의 계절인 셈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페르세포네가 겨울에 명계(冥界)에 위치하는 것은 이러한 이야기를 상징한다고 봐도 좋다.이왕 페르세포네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는 지옥의 신 하데스에게 납치당하여 결혼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분노한 데메테르에 의해 지상의 모든 생명이 절멸할 위기에 처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제우스와 하데스가 설득과 협상으로 일정 기간 페르세포네를 지상으로 돌려보내주게 되는데, 그렇게 페르세포네가 지하에 있는 시기가 가을과 겨울, 지상으로 돌아오는 시기가 봄과 여름이라는 대략적인 이야기다.그런데, 이 유명한 페르세포네 이야기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페르세포네가 ‘무슨 여신’이냐는 사실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아폴론은 ‘태양의 신’,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 아프로디테는 ‘미의 여신’식으로 분명한 상징을 가지고 있는데, 페르세포네는 그저 명왕 하데스의 부인으로만 알려진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글 분량의 제한이 있으니 바로 말하자면, 그녀는 ‘씨앗의 여신’이다. 재미있지 않나? 지하명왕의 하데스에 의해 가을부터 땅속으로 들어가서 봄이 되면 움터서 생명이 되어 지상으로 돌아오는 씨앗의 여신. 그리스 로마 신화가 절묘한 비유와 상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 부분만 보아도 알 수 있다.가을은 추수의 계절이다. 그리고, 그 추수라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는 ‘결과’, ‘풍요’를 상징하지만, 생명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죽음’인 셈이다. 만물이 순리대로 움직이기에 생명이 가을 서리를 맞으면 그 생장을 멈추고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 생명체의 의지가 아닌 것은 다소 잔혹한 사실이다.그러나, 세상과 우주의 섭리는 지속적인 순환에 그 큰 뜻이 있다. 추수라는 이름의 죽음은 그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을 이어가는 ‘생명의 순환으로써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크게 보면 비단 식물뿐 아니라, 모든 동물들도 새끼를 낳고 늙고 죽는 것은 다 마찬가지이다. 신은 모든 생명체를 그냥 영원히 살게 했으면 되는 것을 왜 굳이 이런 생명과 죽음의 고리를 만들어서 우리를 울고 웃게 했던 것일까?그것은 아마도, 그 죽음과 생명의 연결고리의 순환에서 더 많은 생명의 번영과 풍요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한다면, 노랗게 물든 저 논밭을 한 번 보라. 저 노랗게 물든 논과 밭은 농부들의 일년 동안의 피땀 어린 노력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저 농작물을 먹고 자랄 우리 아이들과 인간들의 번영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즉, 이 가을의 추수(秋收)는 단순히 벼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씨앗이 내년 봄에 다시 움틀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내년까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에게 에너지와 생명력을 불어넣어줌을 의미하는 것이다. 추수라는 것의 의미는 ‘거두어 들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거두어 들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다시 한 번 뛰겠다는 도약의 준비임을 알 수 있다.가을이다. 책 읽기에 좋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에도 좋은 계절이다.농업에 종사하지 않는다고 해도, 일 년간 우리가 해왔던 일들을 정신적으로 추수(秋收)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래야 또 한 번 뛸 준비를 할 수 있을 테니까.

칼럼 | 매일경기 | 2020-10-19 14:43

ㅣ최제영 大記者 칼럼ㅣ대부도가 농어촌인데도 불구하고 역차별을 받고 있다면 해당 주민들의 심정은 과연 어떠할까. 정치권과 안산시에서 차라리 대부면으로 되돌리자는 주장이 나와 대내외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직 주민들의 의견은 집약된게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최종 목적지까지는 가야할 길은 멀다고 볼 수 있다. 우선은 지역에 대한 설명부터 해야겠다.대부도는 단원구 서쪽 끝에 위치에 있으며, 산·바다·갯벌로 이뤄진 땅이다. 바다에선 김과 천일염을 생산한다. 아주 오래된 일이다. 거기에다 논과 포도밭 산지도 넓게 펼쳐져 있다.산업도시로 알려진 안산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전형적인 농어촌 마을이기도 하다. 이미자가 부른 섬마을 선생님의 가사가 나오는 고장이기도 하다. 안산시는 1986년 시(市)로 승격했다. 이제 어른이 된 셈이다.대부면이 대부동으로 명칭이 변경된 시기는 1994년이다. 당시 대부도는 유·무인도 19개의 섬으로 이뤄진 섬마을이었다.시화지구 개발사업에 따라 1988년 5월 화성시 서신면과 연결됐다. 1994년 1월에는 시흥시 정왕동과 대부도 방아머리를 잇는 12.7㎞의 방파제가 완공되기도 했다.물막이 공사를 마무리하면서 결국 섬이 육지로 태어난 것이다.1994년 12월 26일 주민투표로 화성시 일부와 인천시 옹진군 대부면 전체가 안산시로 편입됐다. 그래서 붙혀진 행정명이 바로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이다.현행 지방자치법상 도농 복합형태 시 중 도시 형태를 갖추지 않은 지역에 읍·면을 설치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시는 동(洞)만을 지정할 수 있다.이름만 동(洞)으로 바뀌었을 뿐 주민들은 여전히 농사를 짓고 바닷일을 했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얘기다. 현재 대부동은 4957가구(인구 8926명)가 거주하고 있다.25.8%인 1283가구는 농사를 짓는다. 24.4%(1210가구)는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전체 면적(46.0㎢)의 88.6%(40.7㎢)가 녹지다.주거 및 상업지역은 1.4㎢(3.1%)와 0.1㎢(0.2%)에 불과하다.하지만 행정 처리에선 동(洞)이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받고있다. 농촌 지역 지원은 받지 못하면서 도시 사람과 똑같은 세금을 냈다. 학생들은 농어촌 특별전형 혜택도 받지 못했다.다른 지역 학교로 등교하는 불편도 뒤따랐다. 주민들은 1999년부터 안산시에 대부도 마을을 농어촌 지역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지역 발전 및 교육 세금 관련 분야 등에서 역차별을 받고 있는데 따른 불만이 높아질 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다.그런 가운데 지역 정치권과 안산시에서 대부동을 대부면으로 다시 되돌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과거로 되돌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칼럼 | 매일경기 | 2020-10-19 14:42

ㅣ이민근 칼럼ㅣ민생정책연구소 이사장, 전 안산시의회 의장필자가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한 이후부터 들어왔고, 스스로에게 자문하곤 했던 질문유형이 있다. 바로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 무엇을 위한 정치인가?’이다.이 질문은 필자뿐만 아니라 현실정치에 몸을 담은 이들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며, 질문에 대한 답도 정해져 있는 흔해 빠진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해라는 의미)’ 질문이다. 이민근 칼럼을 읽고 계신 독자들께서도 정답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계실 것이다.그렇다. 바로 ‘국민(혹은 시민)’이다. ‘국민(혹은 시민)’이라는 뻔한 답에 어떤 분들은 비웃을지도 모르겠고, 또 어떤 분들은 ‘국민(혹은 시민)’을 위해 정치하는 위인이 대한민국에 어디 있는 가라며 분노하고 계신 분들도 있을 지도 모르겠다.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비웃음을, 또 누군가에게는 분노를 만들어내는 뻔하디 뻔한 ‘국민(혹은 시민)을 위한 정치’라는 말이, 필자에게는 약 15년 전 상당히 잘나갔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정치인으로써의 길을 걷도록 결정하게 만들었던 ‘가슴 뛰는 말’이었고, 지난 12년간 안산시의원으로써 활동하는 동안 개인적인 이익을 챙기지 않고 오직 안산지역과 안산시민의 생활만을 돌아보게 만들었던 ‘정치인 이민근의 이정표이자 정치적 자존심 같은 말’이었다.필자에게는 ‘국민(혹은 시민)을 위한 정치’라는 말이 지닌 의미가 소중했고 무거웠기 때문에, 오늘날 국민이 아닌 개인의 영달이나 정권연장의 수단 등이 정치의 목적인 것처럼 보여주고 있는 정치인들의 몇 가지 행태로부터 커다란 불편함과 불편함을 느꼈다.자신들이 가진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자신들을 향한 범죄의혹을 수사하던 조직을 산산조각 내고, 자신들에 대해 합당한 의혹을 제기하던 국민들을 범죄자나 음모론자 취급하고,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국민들을 향해 서슴없이 독설을 내뱉으며 적대감을 표현하는 모습과 근무 중에 실족하여 북한 공해로 흘러간 우리 국민인 공무원이 북한 해군에 억류되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바라보기만 했던 우리 군 당국, 대략 6시간을 바다에 떠 있다가 북한군인의 총에 사살되고 그 시체마저 불태워진 것으로 보이는 만행에 분노하기는커녕 해당 공무원을 서둘러 월북자로 단정지어버린 채 김정은의 사과문에 대하여만 감격해 마지않는 여당 정치인의 모습들.그리고 다수의 여권 관계자가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금융사기 사건에 대하여는, 많은 국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해명 없이 수사를 미뤄오다가 눈에 가시 같은 검찰과 야당 정치인의 연류설이 불거지자 이 부분에 대해서만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감찰하겠다는 정부부처의 움직임 등은 이러한 정치활동들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느껴지게 만들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당당했던 그들의 태도는, 때때로 정치에 대해 필자가 그동안 잘못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나하는 의구심까지도 들게 만들었던 것이다.오늘날 우리 정치를 대의민주주의(代議民主主義)라고 부른다. 각자의 삶이 바쁜 국민들이 직접 정치활동에 참여하는 대신 선거를 통해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고, 선거를 통해 권력을 손에 넣은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대신하여 활동하는 정치체제이다.즉, 국민의 대표라고 불리는 정치인들이 갖는 정치권력은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것을 빌려온 것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정치인들은 철저하게 국민을 위해서만 정치권력을 사용해야 하며, 그들의 정치목적은 ‘오직 국민’이어야만 한다. 국민 이외의 다른 것이 정치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과거 필자가 자신에게 수없이 던져보았던 질문들을 오늘날 정치권력을 잡은 정치인들에게 던져본다.‘당신들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고 있는가?’‘당신들은 오직 국민들만 바라보며,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국민들이 당신들에게 권력을 위임한 것을 후회하지 않고, 안심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이 질문들을 통해 자신이 휘두르는 정치권력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 지 진중하게 점검해보고, 향후 오직 국민만 바라보며, 다른 이유가 아닌 오직 국민의 삶을 위한 정치활동을 해주길 부탁드린다.

칼럼 | 매일경기 | 2020-10-19 14:41

ㅣ한정규 칼럼ㅣ문학평론가광주출신 양모 국회의원이 "지역민들이 문재인 대통령 같은 분은 앞으로 다시 나오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고 했다. 그래 말인데 간신이 나오면 안 되는데 간신 네가 왜 거기서 나와?인류 역사 중 집권자 주변에는 적지 않은 간신들이 우굴거렸다. 대부분 집권자는 간신들의 농간에 넘어가 춤을 추었다. 때로는 지르박, 브루스, 트위스트를 쳤다. 그렇다보니 결과적으로 간신이 집권자를 지배 자칫 잘못되면 집권자 왕 또는 대통령이 간신의 대리인 더 나아가 노예가 됐다. 눈먼 장님이 되고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돼 간신의 정보에 움직이게 됐다.결국 간신이 국정을 농단 나라가 어지럽게 된다. 중요한 것은 집권자의 자세다.간신은 늘 집권자 주변 가까이 붙어 음흉한 짓을 하는가 하면 터무니없는 칭찬을 늘어놓는다. 칭찬은 어른 아이 남녀노소 직위고하 하물며 일국의 최고 집권자인 총리 또는 대통령도 좋아하긴 마찬가지다.간신들은 사람들의 그런 심리를 적극 이용한다. 인류 역사상 간신들 대부분은 집권자 주변 지금 같으면 비서실 직원격인 환관들이었다.간신들의 공통적인 수단방법에는 *허황된 농담으로 거짓을 꾸미며 위아래 모두를 기만하며. *흑을 백이라 하며 참과 거짓을 혼돈스럽게 만들고.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만들어 내어 무고와 모함을 일삼으며.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으면서 입으로는 달콤한 말만하며 건성웃음을 짓는데 그 건성웃음 속에는 늘 비수를 품는다.*또 겉으로는 받드는 척하고 속으로는 거슬리는 마음을 지니며 양쪽 칼날이 선과 창을 겨누고. *군주에게 아부하여 군주 스스로 폭거가 되게끔 유도하며. *당파를 만들어서 이리떼처럼 농간을 부라고. *이간질을 통해 서로 모함하게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창과 패의 상대적 우세함을 과시하는 모순을 스스로 범한다. *또 음해를 거듭하며 돌아서서 사람을 무는 행패를 서슴치 않고. *사람을 위협하고 압박하며 마치 은혜를 베풀 듯이 꾀어내서 내 편으로 만든 다음 당근과 독약의 처방을 함께 구사하여 사람을 하수인으로 이용한다.문제는 간신들 농간에 놀아나다 보면 국가 미래가 불투명해진다. 그 융성했던 중국의 진나라도 조고라는 간신의 농간에 시황제가 속았다. 조고는 시황제를 꼬드겨 대형토목공사를 하도록 하여 자신의 이익만 챙겼다. 그 때문에 국가 재정이 파탄 결국 간신 조고의 농간으로 패망하고 말았다.21세기 초인 2017년 최순실이라는 여인이 박근혜 대통령 주변을 맴돌면서 뱃속에는 음흉한 흉기를 숨기고 입으로는 더없는 천사처럼 달콤한 말로 각 분야에서 국정을 농단 자신만의 영화를 누리다 결국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렸다.그 때문에 국민 5천여 만 명이 겪었던 고통 적지 않았다. 간신 너 네가 왜 거기서 나와서 한 인간의 행복을 무너뜨리고 모든 국민을 힘들게 만들었었는지? 그가 원망스럽다.중요한 것은 국내외 모든 국민의 행복을 위해 박근혜와 최순실 그들로 그쳐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이 땅에 불행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문제는 요즘 몇몇 사건들을 보면 곳곳에서 별의별 행태의 간신들이 들끓고 있는 것 같아 심히 걱정된다.인간의 삶, 굵고 짧게 사는 것보다 가늘고 길게 사는 것 결코 나쁘지 않다. 권력 탐내지 말고 재물 욕심 부리지 말고 조금은 낮은 곳이라도 조금은 가진 것 부족하더라도 정의 공정을 중시 정직하게 살아 죽은 뒤 무덤에 침 뱉는 이 없는 그런 삶 해서 나쁠 것 없다. 그들에게 하는 충고다.

칼럼 | 매일경기 | 2020-10-19 14:39

ㅣ서영숙의 미술세상ㅣ안산환경미술협회 회장 서영숙고흐(빈센트 반 고흐 1853~1890)의 처음이자 마지막 팔렸던 단 한 점의 작품 <아를의 붉은 포도밭>단풍이 물드는 10월 문득 고흐의 <아를의 붉은 포도밭>이 몹시 보고 싶다. 고흐의 이 작품은 1888년 폴 고갱과 함께 생활했던 아를의 야외에서 그린 작품이다.반 고흐는 동생 테오(Theo)에게 이 그림에 대해 “비가 내린 뒤 석양이 땅을 보라색으로 바꾸고 포도 잎을 와인처럼 붉게 물들일 때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가을의 포도밭과 포도 따른 사람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제작했던 이 그림에서 하늘의 초록색 색조는 전체 구도를 지배하는 강렬한 붉은 색조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전체적인 구성은 오른쪽에서 중앙을 향한 원근법적 구도와, 멀리 보이는 완만한 지평선의 수평 구도가 특징적이다. 색채 표현에 있어서 그는 각각의 모티프에 보색을 사용했는데, 특히 밝은 노란색, 붉은색, 파란색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또한 붉은 포도밭에서 일하고 있는 농부들의 표현이나, 일몰의 강력한 빛의 영향을 보여주는 주황색의 표현이 두드러진다.이 작품은 특별히 반 고흐가 테오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그려 선물한 것이었다.테오는 매달 반 고흐에게 생활비와 작업비를 보내줬으며, 그에 대하여 항상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었던 반 고흐가 이 그림을 선물한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그가 생전에 그린 1,500여 점의 유화 중에서 테오가 팔았던 유일한 작품이다.테오는 이 작품을 1890년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20인전에 출품했는데, 그때 반 고흐와 친분을 쌓고 있었던 시인 외젠 보쉬의 누이이자 벨기에 인상주의 여류 화가인 안나 보쉬가 400프랑에 구입했다. 그녀는 작품이 아름답고 빈센트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내고 싶었으며, 빈센트에 대한 재정적인 어려움에 도움을 주고 싶어 구입했다고 한다.이후 그녀는 이 작품을 파리에 베른하임 갤러리에 10,000프랑에 팔았단다 무려 25배 하지만 재정적 어려움이 아닌 고흐의 작품에 압도되어 본인의 작품활동을 할 수 없어서란다. 예나 지금이나 작품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변함 없었던 듯하다. 그 작품은 한 러시아 사업가를 통해 러시아 정부가 소유하게 되었으며, 현재는 모스크바의 푸시킨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유독 재료가 많이 드는 작업을 하는 작가인 나는 유독 재료에 욕심이 많아 틈만 나면 재료를 사다 쌓는다.언제든 작업할 때 부족함이 없이하려는 나름의 계획이다. 매달 동생에게 생활비를 받아 전업 작가로 살며 마음 졸였을 고흐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루어 짐작이 가며 작품이 팔려 기쁨에 겨워 썼던 편지가 너무 공감이 가는 가을- 오늘 나의 삶에 감사하며

칼럼 | 매일경기 | 2020-10-19 14:38

ㅣ교육칼럼ㅣ정인숙 교육학 박사, 특수교육 전공‘다큐멘터리 3일’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느 할머니는 충무로 시장 구석진 자리에서 채소장사를 40년 이상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돈은 못 벌었다’고 하셨다. 허리는 90도 정도로 굽어 있고, 앉았다 일어서는 것도 자유롭지는 못했다.하루 팔아야 할 채소를 큰 도로 길가에 차량으로 배달해 놓으면 골목 안 가게까지 옮겨야 하는데, 그럴 힘이 없어서 짐꾼의 도움을 받아서 겨우 채소를 가게로 옮긴 후, 진열하여 팔고 계셨다. 피디가 ‘시장이 앞으로 어떻게 되길 바라는 지’에 대해 물어보니, ‘이대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이 지역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답변 하셨다. ‘언제까지 장사를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움직일 수 있는 날까지 장사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80년 이상 된 할머니의 인생에는 수많은 사연이 있을 것이고, 지금처럼 굽어진 허리에서 엿볼 수 있는 ‘삶의 무게’는 어떤 말로도 표현이 부족할 것이다.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의 무게’가 무거워지고 있다. 코로나 초창기에는 항공업계와 여행업계 등에 대한 염려가 컸는데, 코로나19 기간이 길어지면서 날이 갈수록 중소 상공인, 자영업자 등을 비롯하여, PC방, 노래방, 커피점 등은 너무나 타격이 심하여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이런 피해의 직접 당사자와 가족들까지 포함한다면 대다수 국민들의 ‘삶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졌다. 이런 와중에 폭등한 집값과 전셋값은 헤어 나올 수 없는 허탈감을 준다. 체소 한 개 팔아서 조금의 이익을 남기고 그 작은 돈을 모아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생계를 유지하면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일상생활과 비교해본다면 집 값 상승은 1억도 아닌 5억〜10억이 정말 눈 깜짝 할 사이라고 표현될 만큼 짧은 시간에 상승해 버렸고, 직장이나 사업 등 생계를 위해 거주하던 곳이 지역이 ‘어디인가’에 따라 거의 비슷했던 집값이 어느 순간 3~4배로 격차가 심해진 현실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수도권은 전셋값이 폭등해 살 집을 구하기도 어려워지고, 많은 주택들이 월세로 전환되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살림에 월세까지 지급하며 살아야 하는 상황도 있다. 코로나의 질병에 대한 공포와 생계의 공포, 뭔가 순식간에 너무 빨리 바뀌는 일들이 많아서 불안감도 커진다.지금처럼 어려움이 지속되는 시기에는 어떻게 살아야 조금이라도 ‘삶의 무게’를 줄일 수 있을까? 일단 걱정의 무게를 내려놔야 할 것 같다. 성철스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라’는 글에서 “걱정할 거면 딱 두 가지만 걱정해라, 지금 아픈가? 안 아픈가? 안 아프면 걱정하지 말고, 아프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나을 병인가? 안 나을 병인가? 나을 병이면 걱정하지 말고 안 나을 병이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죽을병인가? 안 죽을병인가? 안 죽을병이면 걱정하지 말고, 죽은 병이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천국에 갈 것 같은가? 지옥에 갈 거 같은가? 천국에 갈 거 같으면 걱정하지 말고, 지옥에 갈 사람이 걱정해서 뭐하냐? 가라, 가서 체험해 봐라” 결국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이런 관점에서 걱정을 버리고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남들이 가진 것들을 가지고 싶은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그러나 현실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망상’이 된다.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가장 중요한 것부터 순위를 정해보자.무엇이 얼마만큼 있으면 나의 삶이 현실 안에서 마음의 평안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 항상 더 가져야만 발전된 삶이라 여겨왔지만, 사실은 아닌 경우도 많다. 많아서 너무 무거운 경우도 있다. 버릴 것을 버려 보자. 방 정리, 장난감 정리, 서재 정리, 옷 정리, 냉장고 정리를 한 후의 그 시원함을 누구나 한번쯤은 맛보았을 것이다.가진 재산, 무거운 목표,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삶의 태도, 너무 과하게 쓰러질 정도로 하고 있는 노력의 무게를 줄여보자. 내 나이에 맞는 적절한 목표와 나의 신체와 정신이 허락하는 범주 내에서 조화롭게 노력해보자. 죽을 만큼 노력한 결과가 결실을 맺어 행복한 성취를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욕심’과 ‘걱정’을 줄이고,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감사’할 일들을 찾으며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칼럼 | 매일경기 | 2020-10-19 14:36

ㅣ기자칼럼ㅣ신도성 시민기자경남 거창고등학교 강단 뒤편 액자에 직업선택의 십계가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4. 모든 조건이 갖춰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7.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로 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소위 직업선택의 십계명이라 불리는데 읽어본 독자의 마음은 어떤가? 편안한가? 불편한가? 아무런 반응도 안 느끼나?부모의 온전한 삶을 영끌해서 자녀교육에 올인해도 시원치 않은 교육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얘기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다. 교과서에서나 나올 수 있는 좋은 가르침이지만 내 자식에게 실제 적용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것이다.만일 거창고등학교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직업선택의 십계를 문구 그대로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면 벌써 외면당하고 잊혀졌을 것이고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벗어났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청년들의 취업이 어려워지면 질수록 직업선택 십계 이야기가 많은 사람의 입에서 회자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2015년 발간된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강현정 전성은 지음) 책에는 직업선택의 십계를 풀어서 소개하고 있다. 전성은 전 거창고 교장은 “세상이 재물과 군사력을 힘으로 보지만 사랑을 힘으로 보는 가르침 그것이 직업십계명의 가르침이다.” 말하면서 인간의 참된 힘과 행복과 성공은 월급이 많은 쪽에 있는 것도 아니고. 왕관이 있는 쪽에 있는 것도 아니며 단두대가 있는 쪽이라고 강조한다.월급이 많은 쪽이나 남들이 앞을 다투어 모이는 쪽을 택하면 본인의 고유한 색깔을 잃을 수도 있으니 그런 곳에는 가지 않으면 좋겠다는 가르침이다. 거창고에서 이것을 학생에게 가르치는 것은 졸업생들이 힘의 논리에서 강자가 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즉 세상에 힘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서 힘 모으는 일에만 매달리지 말자는 가르침이다.젊은 학부모 어머니로 구성된 지역 인터넷 까페에 직업선택의 십계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까페 회원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보았다. 대체적으로 좋은 얘기이고 교육적으로 바른 정신을 심는데 필요한 교훈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기회를 놓치지 않고 만일 당신의 자식이나 남편과 같은 가족이 직업십계명의 기준으로 직장을 선택한다면 환영하겠는가? 물으니 대부분의 댓글에서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반응이다. 남의 이야기라면 옳은 가르침이라고 하면서도 막상 나의 경우라면 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한 사람에게 있어서나 가정에게 있어서 직업은 소중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요즘처럼 취업이 오랫동안 어려운 시즌에는 더욱 더 그렇다. 이러한 경향은 노량진으로 대표되는 공시촌에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서 생활하며 꿈과 이상을 접고 안정적인 직업과 더 안정적인 철밥통을 쟁취하려는 비합리적인 현상으로 표출되었다.공시촌 그들은 컵밥과 원룸, 그리고 인터넷강의와 사설학원이 조화를 이루는 곳에서 365일 24시간을 보내고 있다. 추석명절도 데이트도 낭만도 미뤄둔 채로 말이다. 교육혁신위원장 역임한 전성은 거창고 전 교장이 수원에서 강연하였을 때에 많은 학부모들은 이구동성으로 공부와 인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고 내 자녀만 잘되기만을 바라는, 그래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하려면 어떻게 자녀교육을 해줘야 하는지를 물었다.전성은 전 교장의 답변은 의외로 단순하다. 학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이고 실천하라는 것이다. 특수한 비법을 기대하였던 학부모들은 평범한 답변에 쓰디쓴 약초를 한입 깨문 표정을 지었다.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직업선택의 십계를 본인의 경우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궁금하다.

칼럼 | 매일경기 | 2020-10-12 15:53

ㅣ최제영 大記者 칼럼ㅣ추석을 얘기할 때 단골 속담이 있다. "더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윗날만 같아라" 는 말이다. 매일 매일이 한가윗날만 같았으면 좋겠다는 뜻일 것이다.추석 연휴가 끝나자 마자 반갑지 않은 뉴스가 등장하고 있다. 안산시와 안산도시공사 얘기다.안산도시공사가 안산시의 감사와 관련해 부당함을 쏟아내는 모양새를 띄고 있는데,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안산도시공사가 임명권자 위치에 있는 안산시를 상대로 저항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감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미지수다.안산도시공사는 안산시 감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우리나라 감사의 최고 기관인 감사원에 감사 행태를 조사해 달라며 진정서를 냈다.아직 안산시와 안산도시공사 중 어느 기관 말이 맞는지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다. 감사원에 진정서를 낸 이상 감사원은 안산도시공사가 주장하는 내용에 대한 진위부터 따질 것으로 보여 진다.필자가 이번 사태를 보는 근본적인 본질은 윤화섭 안산시장과 양근서 안산도시공사 사장간의 긴장관계가 수면위로 떠올랐다는 점이다.두 사람은 경기도의원을 같이 역임했고 지난 선거에서는 시장 당선에 한 몸이 돼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갈등설이 나왔다. 이번 감사와 별개라 치더라도 주변에서는 이를 확대 해석할 수도 있다.사람들은 정치를 일컬어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라는 말을 한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표현도 하고 있다. 정치가 생물처럼 움직인다는 뜻이다.정치적 상황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정치 생명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양 기관이 시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볼 때 이번 같은 태도는 시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권력은 십 년을 못가고 붉게 활짝 핀 꽃도 열흘을 넘지 못한다는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도 되새겨야 한다. 지혜는 사람만이 필요한 게 아니고 행정기관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칼럼 | 최제영 기자 | 2020-10-12 15:52

ㅣ대동세상ㅣ서한석 경기테크노파크 전략사업본부장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한때 유행했었다. 나름 멋있게 들릴지는 몰라도 좋은 말은 아니다. 무언가 희생이 발생하는데 그 속에는 억울함이 있기 때문이다.민주제도를 인간이 추구할 최상의 모델이라고 볼 수 있을까? 민주제는 권력독식으로 악을 자행하는 봉건제를 부수는 효과적인 무기였었다. 그러나 권력 분산은 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그 권력에 존재하는 악은 여전히 활보하고 있다.현대의 민주제도는 이익에 천착해서 사물을 바라보는 서양사상의 한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민주제가 아무리 발달하고 최상에 이르러도 필자가 보기에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이상향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한계가 있다.자연은 몇 백만년 주기로 모든 생명을 말살하고 생성시킨다. 빙하기와 지진이나 화산 폭발로 살아 있는 것들을 논밭 갈아엎듯이 한다. 인간이 거창한 문명을 이루었더라도 어쩔 수 없다.더 길게 보면 우주는 빅뱅, 블랙홀, 별들의 탄생과 진화등에서 창조하고 멸망시킨다. 은하계, 태양계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을 벗어난 창조와 파괴가 반복되고 있다. 우주와 자연을 선과 악으로 나누거나 규정할 수가 없다.이러한 자연관을 동양사상은 천지인 사상으로 접목하고 있다. 동양 정신은 선과 악을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는 것으로 본다. 동양정신에서 악(惡)은 단지 추하고 올바르지 않다는 뜻이다. 올바르지 않다고 악마는 아니다. 그래서 읽을 때도 악(惡)을 추할 오로 읽어야 한다. 그리고 선의 반대말은 非善이다.그래서 어떤 것은 나쁘고 저런 것은 좋다는 관점은 잠시동안만 유효하다. 시간이 지나면 나쁜 것은 발효되고 좋은 것은 부패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영원히 좋은 것, 영원히 나쁜 것은 없다. 악을 벌할 수는 있지만 없앨 수는 없다. 악이 없으면 선도 없다. 선만 있는 세상이나 악만 있는 현실은 없다. 이러한 세계관에서 보면 선과 악이 공존한다. 다만 인간 사회속의 민주주의는 선을 실천하고 악을 줄여나가는 행동일 뿐이다. 그래서 정도이며 덕성의 한 종류일 뿐이다.민주사회는 선과 악이 순환한다. 다만 차별과 불평등이 없도록 선을 이루고 덕을 쌓아야 한다. 정의를 실현하며 평등을 만들어 나가지만 살기 위해서 타(他)를 죽이며 적자생존하는 사회이다. 동시에 아(我)가 존재하기 위해 타아(他我)가 희생했음을 알고 이에 보답하고 봉사하는 이타적 존재이다. 사회의 발전은 후자가 왕성해야 건전한 성장을 하게 된다. 다만 사회를 평화롭게 이끄는 이타적 생명활동도 여전히 타자의 희생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검소하고 절약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질 풍요의 소비 만능 사회에서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민주주의는 기득권층에게 좋은 것이지만 약자에겐 不善한 것이 많다. 인간 사회에서 저 인간은 이렇다 저렇다라고 평가하는 것이 어떨 때는 주홍글씨를 새기고 마녀 사냥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것은 민주제도가 서양사상에서 유래하였기 때문이다. 서양사상으로 본 인간 역사는 선과 악이 대립한 산물이며 불확실한 선과 불확실한 악이 이전 투구한 양상이다. 악이란 말은 서양의 이분법적 발상에 기인한다. 유일신을 믿게 된 서양은 다른 신을 악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대립과 투쟁의 세계관은 허구적이다. 서양의 배타적이고 이분법적인 善惡觀은 저열하기 짝이 없다. 자기 중심적인 논리일 뿐이며 변견(邊見)이다.동양 철학 관점에서 보면 선과 악을 나눈 것도 우습지만 천명(天命)을 지닌 인간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어설프다. 인간은 우주가 몽땅 파괴되는 빅뱅을 하더라도 자연의 섭리에 찬동하고 순응할 수 있는 우주적 존재이다.자연은 인위적인 악을 혐오한다. 플라스틱, 프레온, 일산화탄소 같은 화학적이고 자연적으로 분해가 잘 되지 않는 것들이다. 그런 인위적인 것들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한다. 그러나 인위적인 발명품들은 인간 생명에는 도움이 되지만 자연에겐 위협요소이다. 참 이율배반적인 상황이다.동양 세계관은 우주의 생성과 파괴에서 인간들이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본질이며 실체를 설명하고 있다. 수신과 극기를 통하여 본연의 인간성을 갈고 유지하길 원한다. 인간이 어디에도 치우친바 없는 자유로운 마음을 가진 고귀한 존재이길 바란다.이렇듯 생명은 선과 악(실제로는 不善)를 동시에 담지한 고귀한 존재이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자연적인 행위는 타자의 희생이 있기에 不善하면서도 선한 것이다. 단지 인위적인 해로운 물질 생산과 행동들은 지양하고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지구안에서 자연에게 위해를 가하는 주된 역할을 인간이 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도 서양사상에 기인한 인위적인 추함을 배제해야 한다. 과도한 비난과 혐오를 지양해야 한다. 보편적인 동양 정신이 민주주의의 결함을 보완할 수 있다. 이분법적인 서양사상을 극복할 수 있다. 인류가 고민하는 행복한 삶의 본질이 동양정신에 있다.

칼럼 | 매일경기 | 2020-10-12 15:50

ㅣ한정규칼럼ㅣ한정규 문학평론가2020년 10월 3일 개천절 날이었다. 그날 한국 서울 광화문에서 정부규탄시위가 있을 것을 예상 경찰이 광화문에 버스 수 백여 대를 동원 약 4Km 거리를 차로 벽을 쌓았다. 뿐만 아니라 경찰도 약 1만여 명을 동원 대기시켰다. 그것을 시민들 사이에서는 재인산성이라고 했다. 또 광화문일대에 차량진입을 통제하기 위해 90여 곳에 임시검문소를 설치 검문을 했다.피 검문 승용차 안에서 태극기가 보이자 검문경찰관이 “차안에 왜 태극기가 있느냐?”며 통행을 저지했다.차안에 태극기 있는 것이 왜? 무엇이 잘못돼 불법이라 하느냐 되묻자 코로나19 확산위험방지차원에서 하는 거라 단속하는 것이 적법하다고 했다. 차안에 있는 태극기와 코로나19 확산과 무슨 인과관계가 있는지 보통사람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경찰관 하는 말이 어이가 없어 혼자말로 “태극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빨리 가야 하는데 못 가잖아 그리고 핸들 중심을 툭툭 쳤다. 그러자 차도 화가 났는지 뽕뽕~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놀란 경찰들이 어디에선가 우르르 몰려 와 경적시위를 한다며 체포하겠다고 하여 체포당할 뻔 했다.하필 뽕뽕~ 경적 그 소리 왜 네가 거기서 나와, 너 그 소리 때문에 소란 죄로 끌려갈 뻔 했잖아, 혼자 흥얼거렸다. 아마도국가를 상징하는 태극기가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태극기, 너 태어 난지 오래 됐잖니? 그래요, 1882년 조선시대 태어나 그 지독한 일제강점기 모진 탄압을 받으면서도 한국국민을 지키고 대한민국을 국제사회에 알리며 쉽지 않은 고통을 함께 했었는데 그런 태극기 우리가 무슨 잘 못을 했다고 지금 와서 승용차 안에 조용히 있는데도 태극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하는지 억울하다.태극기, 너 그걸 몰라? 그러니? 몇 년 전 박 모 대통령탄핵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서울 한 복판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하면서 태극기를 들고 흔들어댔다. 그것이 잘못 됐던지 그들을 일컬어 태극기부대, 태극기집회라 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태극기를 들고 시위를 하면 정부비난 따위로 인식 그래서 승용차 안에 있는 태극기를 보고 차안에 왜 태극기가 있느냐 했을 법하다.오라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4~5천여 명이 모여 경신고등하교 출신 정재용이 앞장서 태극기를 흔든 것도 그 뒤 전국 곳곳에서, 저 멀리 미국 하와이서. 이웃 중국 상해, 하얼빈 등에서 태극기를 들고 한국인들 함께 모였을 때 그 잔악한 일본 놈 순경이 잡아가고 총을 쏘고 했던 것도 태극기부대, 태극기집회라서 그랬었는데 혹시 그 때로 착각한가 싶다.태극기 왜 네가 거기서 나와 나 잘 못하면 감옥가게 생겼지 않아? 그 때 선량한 우리 젊은이들 감옥으로 몰아넣었었는지 이제 알 것 같다.국가에는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와 함께 노래하는 국가國歌, 애국가가 있다. 대한민국엔 그 상징이 태극기다.대한민국 국민이 태극기 들고 흔드는 것, 그것도 국내에서 태극기 소지하는 것, 소지했다고 저지해서는 안 된다. 태극기를 소지했다고 죄인시하는, 저지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역적이다.국민이 국기를 소지했는데 ‘차안에 왜 태극기가 있느냐?’ 그리고 그 태극기 때문에 통행을 저지했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경찰의 태도가 아니다. 잘 못 된 이야기로 믿고 싶다.태극기 소지했다고 저지하려면 태극기 말을 꺼내지 말고 다른 명분을 찾아 저지했어야 한다. 태극기 너 왜 거기서 나와 가는 길 저지당하도록 했는지? 그렇다고 태극기 너는 잘 못 한 것 없다. 알았니? 단속한 그자가 무식하거나 이웃 일본 아니면 그곳에서 왔거나 그랬을 것이다. 아니고서야 그럴 리 없지? 태극기 네가 이해해라. 세상 참 이상하게 됐다.

칼럼 | 매일경기 | 2020-10-12 15:48

ㅣ김영희의 미술세계ㅣ김영희 단원작가회장달빛이 침침한 삼경에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네.신윤복이 그린 월하정인의 화제이다.그림의 단순한 구성과 간결한 문구가 오히려 흥미로움을 자아낸다. 화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는 두 남녀의 밀애를 그려낸 그림이다.후미진 담벼락 모퉁이라는 배경에서부터 은밀한 분위기가 짙게 느껴진다. 벽체가 허물어져 가는 집, 어슴푸레하면서도 요염한 빛을 흘리는 달, 나무와 담장 위를 감도는 밤안개 등 전체적으로 깊은 밤의 낭만이 깔려있다.젊은 유생의 발이 돌아갈 길을 향하고 있기에 두 사람이 작별 중임을 알 수 있다. 이때 쓰개치마를 쓴 여인의 얼굴엔 부끄러움이 떠올랐으되, 발끝만은 오히려 남자를 가리키고 있어 정인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의 정서가 한껏 드러난다.남자라 해서 다르지 않다. 그는 여인 쪽으로 등불을 비추며 그윽한 시선을 던진다. 마치 옅은 달빛 때문에, 그녀를 충분히 눈에 담아둘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사방이 몽롱한 달빛에 어스름하지만, 두 연인이 자리한 공간 만큼은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신윤복은 부드러운 붓놀림으로 그들의 아련한 몸짓을 담아내고, 산뜻한 채색으로 연정을 경망 되지 않게 표현해냈다.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시대상을 고려해보았을 때, 쉽게 드러내거나 자랑스럽게 알릴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도화서에 소속된 화원이 이런 소재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더더욱이나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그러나 신윤복은 관습을 허무는 파격적인 선택을 거듭한다. 남녀 간의 애정과 양반들의 풍류와 향락을 화폭에 담아냈다. 모두가 쉬쉬하던 은밀한 부분들을 다루되, 날 선 비판보다는 따뜻한 시선과 해학으로 풍속을 긍정해냈다.사대부들의 눈에 신윤복의 작품 세계는 망측하기 짝이 없었기에, 그는 도화서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그는 붓질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관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야인으로서 시대의 풍속에 더욱 몰입했다.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일상을 그려내고 본질을 묘사했다.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다채로움이 조선 회화사에 아로새겨진 것이다.이러한 배경 덕에 그의 작품들은 단순히 훌륭한 그림으로 평가받는 수준을 넘어서 생활사와 복식사 연구 등에서도 그 탁월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이렇듯 고상하고 근엄한 성취에 감탄하다가 신윤복의 가장 중요한 속삭임을 놓쳐서는 아니 되리라.양반이든 천민이든, 사람들은 이성 못지않게 중요한 본능과 감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화려한 삶을 살든 고단한 일상을 영위하든, 사람들은 사랑의 정열에 타오른다는 것을. 선조든 현대인이든, 가슴 깊이 낭만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을.

칼럼 | 매일경기 | 2020-10-12 15:47

ㅣ신현승 칼럼ㅣ신현승 자유기고가날씨가 부쩍 시원해졌다. 시원해지다 못해 아침저녁으로는 약간의 한기까지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정초부터 코로나 뉴스로 시끌시끌했던 올해도 벌써 ‘10이’라는 숫자에 다다랐다.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지나가던 한 해도 이 ‘10’이라는 숫자에 다다르면, 사람들은 어느새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게 된다.한 해는 12개월로 구성되어있고 그것은 12진법을 의미하지만, 10이라는 숫자는 10진법에 더 익숙한 우리에게 왜인지 완성, 성숙의 의미로 다가온다. 분명, 두 달 전만해도 날씨는 찌는 듯 더웠고, 시간이 언제 지나가나 하고 생각했을 터인데, 어느 새인가 10월이 오게 되면, 가을 아니 그 너머에 있는 겨울마저 느끼게 된다.봄과 여름이 돋아나고 열리고 성장하는 시기라면, 이제 가을은 익는 시기다. 그런데, 이게 말이 좋아 익는 것이지, 생명체의 입장에서는 시들고 죽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름에 새파랗던 나뭇잎과 풀잎들도 생기를 잃고 노랗게, 붉게 시든다. 그것을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또 단풍이라면서 즐기기는 하지만...어찌되었든, 상당수의 생물들이 가을에는 죽을 준비를 하게 된다. 고등한 척추동물들이나 다년생 식물과 나무들은 겨울을 준비해서 죽지 않을 수 있겠지만, 수많은 곤충들과 일년생 식물들은 거의 예외 없이 죽게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풍요’의 계절의 그 내면은 실제로는 죽음으로 가득 들어찬 그야말로 숙살(肅殺)의 계절 그 자체인 것이다.인간사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일생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어 보면, 가을은 중년기를 넘어선 장년기, 또는 노년기 초반에 해당될 것인데, 이 시기는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그다지 좋아하는 시기가 아니다. 외모는 물론이고, 신체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며, 머리도 총기가 떨어지는 것 같고... 당연히 사람들은 젊음을 원하지, 이런 노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그러나, 이미 말했던 것을 뒤집어 이야기해 보면, 모든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죽음으로 가는 길목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또다른 풍요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최근 추석연휴에 나훈아라는 유명 가수가 공연을 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독자들은 그것을 보면서 무엇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마 ‘원숙미’를 많이 느꼈으리라 본다. 여유, 원숙미, 아직 시들지 않은 놀라운 정신적, 육체적 능력.그 분이야말로 진정 한 가을을 지나 겨울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가을의 느낌을 보여주었다. 여유가 묻어나는 원숙미는 봄과 여름의 풋내기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자신이 비록 가을의 숙살을 지나 겨울을 향해 가고 있더라도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는 메시지이자 능력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이들에게 풍부한 영양가를 갖춘 ‘열매’인 것이다. 그 열매는 또한 씨앗이 되어 다음 세대를 잇게 될 것이다. 나훈아라는 가수도 언제인가 죽을 것이고, 우리 모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 우리가 그 가을을 의미있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영양가 있고 아름다운 과실과 씨앗을 다른 사람들, 특히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주기 위함인 것이다. 그것이 가을이 ‘숙살(肅殺)’의 계절이면서도 단순한 죽음을 기다리는 통로가 아닌,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 될 수 있는 이유라고 하겠다.아름다운 계절 가을이다. 우리의 인생과 가을을 한껏 음미해볼 시간이다.

칼럼 | 매일경기 | 2020-10-12 1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