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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최제영 大記者 칼럼ㅣ최제영 大記者제8회 지방 선거일을 1년 5개월여 앞두고 선거 관련 언론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같은 현상은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4월에 있는 탓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꽃'이지만 '정당 공천제'라는 덫에 걸려 퇴색된지 오래다. 동네에서 봉사하는 일꾼을 뽑는데 과연 정당 공천이 필요한가. 아마도 여야가 따로 없을 것이다. 무보수 명예직이던 기초의원 등이 유급제로 전환된지도 오래됐다. 한때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유급제가 당초 취지에 맞지 않다는 주장부터 의정 활동비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맞섰다. 기초의회 및 기초 단체장의 공천제 피해는 적지 않다.국회의원 줄서기 폐단 부터 공천 헌금도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공천권을 가진 국회의원에 잘못 보이면 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마음에 들면 '가'번, 그렇지 않으면 '나'번을 준다는 소문도 들린다. 유권자들은 정당을 보고 투표하고 '나'번 보다 '가'번을 선택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나'번은 불리하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언론인 출신 정찬민 국민의힘(용인갑)국회의원의 행보가 신선함을 더해 주고 있다.2020년 12월 “지방정치의 중앙 예속화를 막기 위해 정당 공천제를 없애야 한다”며 기초단체장·기초의원 공천제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기 때문이다.용인시장을 역임한 그는 지방분권을 위해 공천제 폐지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정당은 모든 선거에 있어 선거구별로 소속 당원을 후보자로 추천할 수 있고, 기초자치단체 후보자들은 정당 추천을 받고 있다.그러나 후보자 추천은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고, 공천을 둘러싼 비리 등의 문제가 끊이질 않아 이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정 의원은 "지방자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준비되고 능력 있는 인물들이 정당 공천이 아닌 자유의지를 통해 선택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면서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자신이 낸 개정안이 반드시 국회에서 통과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정찬민 의원의 주장에 다수 국민들은 공감을 표시할거로 짐작이 된다. 풀뿌리 민주주의 진정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공천을 받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는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바꿔야 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누려온 혜택을 스스로 포기하고 정찬민 의원에 동참하는 의원이 과연 얼마나 될까. 뼈를 깎는 마음으로 이 같은 결행을 한다면 대다수 국민들은 박수를 칠 텐데 말이다.

칼럼 | 매일경기 | 2021-01-18 15:05

ㅣ신현승 칼럼ㅣ신현승 자유기고가온난화 경향이 뚜렷해진 최근의 기후답지 않게 올 겨울은 꽤나 춥고 꽤나 눈이 자주 오고 있다. 도시 생활에서 눈은 일종의 불편함이겠지만, 그렇다고해도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어떤 정서적 감흥을 주는 것은 또 변함이 없다.어린 시절 우리는 눈이 오면, 그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서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곤 했었다. 조금 더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신 분이라면 눈으로 진지 공사도 해 본 경험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같은 눈이라고 해도 싸리눈 정도로는 눈으로 어떤 놀이를 하기는 어렵다. 풍성한 함박눈 정도는 되어야 눈이 제대로 뭉쳐지고, 그것으로 눈뭉치도 만들고, 던지고, 눈사람도 만들 수 있다. 특히나 눈사람같이 좀 큰 물체를 만들 때에는 일종의 요령도 필요한데, 처음 눈을 뭉치게 해주는 ‘구심점’을 잡아주는 물체가 있으면, 눈을 훨씬 빠르고 수월하게 뭉칠 수 있다. 우리 나라가 한참 산업화되던 시기인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는 그 역할을 다름아닌 연탄재가 자주 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 시인의 시처럼, 뜨겁게 자신을 태웠던 연탄재는 그런 식으로 마지막 살신성인을 이루곤 했다. 연탄재를 중심으로 두고 몇 번 눈밭을 굴리면, 어느새 연탄재라는 더럽고 쓸모없는 녀석은 꽤 큼직하고 그럴듯한 눈덩이가 되어 있었다. 거기서 더 굴리고 굴려 눈을 모으면 어느새 눈사람의 몸통이 완성되고, 몸통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머리 부분은 그보다 훨씬 간단하게 뭉칠 수 있다.최근에는 문화도 다양해져서 이런 정형화된 눈사람만이 아니라, 간단하게 아주 작은 눈사람, 오리 모양을 만드는 것도 유행인 듯 하다.그것 참 생산성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 인간이란 수만 년 전의 동굴에서도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고, 장신구를 다듬던 참 생산성 없는 종족인 것이다. 이런 것이 본시 인간 예술 본능의 발로라고 할 것이다. 수만, 수십만 년이 흘러왔지만, 그 본능은 여전히 남아서, 눈이 오면 사람들은 잠깐 어린아이로 돌아가 이런 정서적 감흥을 즐기는 것이다.최근에 눈사람을 부수는 사람들의 CCTV가 뉴스에 공개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눈사람을 부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무래도 본인들의 심기가 편치 않아서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본인들의 마음이 좋지 않다고 해서, 남이 즐거운 마음으로 만들어 놓은 눈사람을 부수어 버리는 것은 어쩐지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는다. 눈 사람 자체가 어떤 가치가 있다기보다는 모처럼 돌아간 동심을 파괴하는 모습은 현재의 메마른 정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현재 사회는 너무나 어려운 상태다. 까페, 노래방, 헬스클럽 등등 자영업자들이 줄지어 도산하고, 정부를 상대로 시위를 하고 있으며, 이 코로나 정국이 끝나더라도 과연 그 불경기가 풀려나가기는 할 것인지 모든 것이 미지수다. 정부의 불안정한 부동산 정책은 이미 국민들의 신뢰를 잃고 있으며, 그것을 반증이라도 하듯이 돈은 주식 시장과 코인 시장에 몰려 연일 춤을 추고 있다. 게다가 최근 들려오는 아동학대에 대한 뉴스는 그야말로 그 정점이라고 하겠다.이런 어려운 시대에 눈은 자주도 오고 있다. 운수업, 화물업자는 물론이요, 일반 시민에게도 불편함을 주는 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편한’ 눈으로 시간낭비를 하며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부자고, 먹고 살만해서 눈으로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들인가? 단언코 아니다. 그것이 본래 인간이고 사람인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본능적으로 정서적 씻김과 치유를 하고 있는 것이며, 또 한 번의 희망을 뭉치고 있는 것이다. 그 안에 더러운 연탄재는 이제 없지만, 세상의 근심과 더러움을 그렇게라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눈은 불편하다. 그렇다. 불편하다고 이야기해도 불편하며, 이야기하지 않아도 불편하다.지금 잠깐 눈을 뭉쳐보자. 시간이 없다면, 한 주먹만큼이라도 뭉쳐보자. 옆 사람이 괜찮다면 던져보아도 좋다. 그렇게라도 잠깐 웃어보자. 지금은 그런 시대다.

칼럼 | 매일경기 | 2021-01-18 15:02

ㅣ서영숙의 미술세상ㅣ서영숙 안산환경미술 협회 회장야수주의 대표 마티스 입체주의 대표 피카소, 실제 둘은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 살았다. 둘은 서로를 잘 알고 있었으며 심지어 선의의 경쟁을 한 대표 작가이다.마티스가 존재감을 과시하던 그 시절, 미술 신동이란 소리를 들으며 자란 피카소의 자신감과 야망은 하늘을 찔렀다. 그는 파리 미술을 평정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조국 스페인을 떠나 파리에 정착한다. 당시 미술계에서 피카소는 무명이자 신인이었다.그런 그가 살롱 도톤 전시회에 걸린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결심한다. 파리미술계를 평정하기 위해선 마티스를 꺾어야 한다고,그러나 마티스는 1905년 1년 전 사망한 세잔에 대한 존경심을 담은 작품 (푸른 누드)를 발표해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이에 경쟁심을 느낀 피카소는 고심 끝에 그의 문제작 (아비뇽의 처녀들)을 발표하게 된다. 5명의 벌거벗은 누드의 여인들은 세잔의 (수욕도)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그들이 연구하던 원시 조각상 같은 처녀들의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작업을 한다.아비뇽의 처녀들에서 가운데 두 여인은 최초의 구상 단계를 유지하나 양쪽의 셋은 신체의 조각들을 섞어 조합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마티스가 (푸른 누드)를 두 개의 시점으로 사용한 데 비해 피카소는 시점의 개수를 무한대로 확장 마티스의 다시점을 극단적으로 분해해 새로운 회화의 장을 연 것이다.피카소가 이 작품을 구상하기까지 100여 장이 넘는 소묘를 그리고 무수한 덧칠 끝에 이 대작을 완성했다.아비뇽의 처녀들 속 여인은 바르셀로나 아비뇽 거리의 매춘부인데 남성을 유혹하는 여인의 모습이 아닌 기괴하고 혐오스러운 모습이 있어 그의 동료나 선후배들은 혹평을 퍼붓기도 했다.그러나 시간이 흘러 마치 부서진 유리 파편 같다는 아비뇽의 처녀는 입체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금세기 최고의 작품이 되었다.회화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린 천재 화가 피카소자신의 작품에 만족하지 않고 수많은 실험의 결과물이 걸작을 탄생시켰다.살아가며 때론 원치 않는 경쟁자를 만나 마음고생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역사에 남을 위대한 위인 뒤에는 이를 계기로 더 피나는 노력 끝에 커다란 업적을 이룬 경우가 많다 나의 현재 어려움이 나중에 큰일을 하는 초석이 되길 바라본다.

칼럼 | 매일경기 | 2021-01-18 15:01

ㅣ시민기자 기고ㅣ신도성 시민기자“여러분~모두 새해에는 부~~자되세요! 꼭이요“ 광고 문구를 기억하시는가? 2002년 신용카드회사 광고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렸다. 당시 얼마나 큰 인기였던지 사람들은 만날 때 마다 인사말을 바꿔놓았다. 부자가 되고 안 되고는 나중의 문제이지만 당장 부자가 되라는 인사말을 들으면 왠지 이유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부자가 되어서 가족들과 근사하게 유럽여행이라도 떠나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광고가 세상에 나온지 어언 20년이 지난 오늘 다시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독특한 효과가 있기에 한동안 집안에서 새해를 대표하는 덕담이었다.새해 첫 날 아침에 대부동동에 위치한 시화나래휴게소와 달 전망대를 찾았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가족단위의 방문객들의 승용차 행렬이, 마치 카라반의 행렬이 사막을 가로질러 가듯이, 이어지고 있었다.달 전망대에 올라서 대부도 방면과 반대편으로 보이는 오이도 방면을 보니 가슴이 탁 트이면서 그동안 타의반 자의반으로 집콕을 해야 했던 기간에 대한 보상심리가 생겼다. 75미터 높이에서 넓게 드리워진 바다를 쳐다보고 있노라니 내가 마치 한 마리 새가된 기분이라 할까? 비록 일출 장면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날도 어김없이 바다에서 물로 깨끗이 씻고 떠오른 해가 하늘 중천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아니 365일 변함없이 같은 해를 보고 있건만 유독 새해 첫날 떠오르는 태양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 순간에도 시화호 조력발전소에서는 마치 커다란 한 무리의 고래 떼가 입으로 물을 토해내듯이 시화호 물을 바다로 바다로 흘려보낸다. 한 폭의 그림이 장관이었다. 배수관문의 한 중앙에 달려있는 전광판에는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도 같은 숫자가 표시되었다.오후가 되면서 점점 늘어난 차량으로 인해서 시화호 방조제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막히기 시작했다. 중앙역에서 북동삼거리 대부해양본부를 주말에만 왕복 운행하는 2층 버스와 해양동 푸르지오 6차후문에서 출발해 탄도까지 운행하는 123번 시내버스가 지나가건만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승객이 그리 많지 않아서 좌석은 여유있어 보인다. 한편으로는 대중교통을 외면하고 복잡한 도로를 승용차로 이용하는 이유에 대해서 안산시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코로나 펜데믹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면서 나 홀로 또는 가족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승객과 함께 이용하는 버스에 불안감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시민의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작년 새해의 시작과 함께 우리에게 영향을 주었던 코로나 펜데믹이 벌써 종식되리라는 당초 기대와 달리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어 해를 넘기며 엄청난 영향을 주리라고 상상했던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된다는 말인가?

칼럼 | 매일경기 | 2021-01-11 15:40

ㅣ최제영 大記者 칼럼ㅣ최제영 大記者21대 총선이 있은 지도 어느덧 9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시민들은 2020년 4월15일 선거에서 더불어 민주당 후보들에게 몰표를 던졌다. 그래서 민주당 국회의원 4명을 만들어줬다.정치 지형적으로 보면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20대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전 미래통합당)이 반반씩 나뉘었던데 비하면 몸집이 두 배나 커진 셈이다.전해철 의원은 3선 고지에 성공해 이제 중진 의원으로 성장했다. 국회 정보위원장을 거쳐 행정안전부 장관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어찌 보면 안산의 자랑이라 할 수 있다.그는 평소 '안산이 키워준 정치인'이라고 자랑할 정도로 안산에 대한 애착이 많은 편이다. 그러기에 안산 발전을 바라는 시민들의 기대는 크다고 할 수 있다.김철민 의원은 안산시장을 지낸 인물로 사람에게 인정 베풀기를 좋아하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의리도 있다고 주변에서는 말을 하고 있다.재선 문턱을 여유 있게 넘으면서 신안산선 등 안산발전을 위한 발걸음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런 노력은 지금도 진행형이라고 한다.21대 총선에서 처음 국회에 입성한 고영인 의원은 초심을 잃지 않고 유권자들을 만나고 있다. 당선되고 나서 환희의 눈물을 여러 차례 흘렸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소시민을 만나면서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있다. 여러 번의 기회 끝에 당선된 만큼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고 있다. 초선답지 않게 다수의 법안을 발의하는 등 국회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김남국 의원 역시 초선이지만 중앙에서의 활약상은 눈부실 정도로 활발하다. 주로 서울에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 김 의원은 안산을 배우고 터득하는데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젊음의 패기를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젊음을 무기로 국회에서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이렇듯 안산에서 배출한 4명의 국회의원들은 국가발전과 안산의 미래를 위해 발로 뛰고 있다.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기대한 만큼 충족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안산이 품격 있는 도시로의 변화를 위해 좀 더 분발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2020년 하반기에는 조두순이라는 성범죄자 만기 출소로 안산이 전국적인 뉴스의 중심에 서 있었다. 몰지각한 유튜버들로 불편과 창피함을 느껴야 했다.2021년 辛丑年 새해가 밝은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다. 4명의 국회의원들은 올 한해 안산의 위상을 높이는데 온 정성을 쏟아주기 바란다. 이런 소망은 시민 모두가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직시해야 한다.

칼럼 | 매일경기 | 2021-01-11 15:36

ㅣ신현승 칼럼ㅣ신현승 자유기고가인류가 기록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되고, 역사(歷史)라는 것이 시작되면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동물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말과 소였을 것이다. 그 외에도 개, 고양이, 양, 돼지 등이 있기는 하지만, 석기 시대부터 지금까지 말과 소가 인류와 함께 이루어낸 성과는 그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정도라고 할 것이다. 개가 비록 사람과 가장 잘 교감할 수 있는 동물이기는 하지만 말과 소가 할 수 있는 수송능력과 생산능력은 어떻게 흉내낼 수가 없는 것이다.그 중에서도 소가 사람과 한 일이란, 사람의 그 역사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 역사의 화려한 부분, 교역이나 전쟁과 관련된 부분은 말이 함께 했지만, 정작 인류가 가장 필요로 했던 농업, 식량, 수송 등의 업무는 모두 이 ‘소’라는 동물을 매개로 했었다. 말처럼 화려하지 않고 빠르지도 않지만, 그 특유의 지구력과 유순함으로 인류의 역사를 우직하게도 끌어왔다. 게다가 ‘육식’을 선호하게 된 현대 시대에서는 그 몸을 바쳐가면서까지 공헌중인 동물이 바로 ‘소’다. 지금은 우유 생산과 고기 생산에 거의 치우쳐 있는 그 모습이지만, 그 성질이나 속성은 아직도 우리에게 전원에 대한 향수, 푸근함과 안정감을 주는 동물이다.소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노동력과 생산의 상징이었으며, 제1의 재산이었다. 불과 몇 십년전만해도 ‘소 팔았다’는 것은 엄청난 리스크를 상징하는 일이었다. 자식이 대학에 가거나 결혼하는 등의 중대사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2021년이 밝았다. 원래 육십갑자(六十甲子)는 입춘을 기준으로 돌기 때문에, 사실 아직 경자년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곧 신축(辛丑)년, 소의 해가 온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지난 것은 가고 새로운 것이 오는 시기다.지난 해가 마치 어두운 곳으로 몰려가는 쥐떼처럼, 역병이 돌고, 곳간이 털리는 해였다면, 이제 올해는 외양간에서 푸짐하게 여물을 먹고 입김을 내뿜으며 농사 나설 준비를 하는 우리의 일꾼 ‘소’ 같은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모든 것은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소가 무조건 좋은 것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입장에서 아무래도 좋은 일이 많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지금 사회는 많이 피폐해져 있다. 이미 이 이전의 글들에서도 여러 번 표현했었지만, 사람들은 최근의 그 어느 때보다 가난해져 있으며, 빈부의 격차는 더더욱 벌어져가고 있는 모양새다. 거기에 코로나19까지 덮쳐, 말 그대로 사회 자체가 버티고 서 있기조차 힘겨운 상태다.이러한 상황에서 ‘소’의 해가 왔으니, 어찌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라 하겠다.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소가 바로 ‘지구력’과 ‘참을성’의 상징이기 때문이다.새해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우리가 생각해야 할 부분은 바로 지구력과 참을성이라고 생각한다. 막연히 두 눈 꿈벅 대며 서 있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버텨내고 참아내고 이겨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이다. 승부라는 것은 쉽게 이기는 경우도 있겠지만, 진정 큰 승리라 하는 것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거두었을 때 큰 승리인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의 이 시련들. 버티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언제나처럼 막연히 다른 화려한 ‘복(福)’을 떠올릴 게 아니라, 이 시련을 굳건히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하는 것이다.정말 소처럼 말이다.아마도 우리 사회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다. 여러 가지 비정상적인 행태들이 나타나고 있고, 부동산과 주식시장, 코인시장 등이 요동치고 있다. 애초에 그러한 투자 시장에 뛰어들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에게는 또 그조차 사치인 상태다.소처럼 버티자. 발 밑이 진흙밭이어도 버티자. 소처럼 말이다.워랜 버핏이 말한 ‘버티기’는 투자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생활, 그리고 생존 그 자체에 해당되기도 하는 말인 것이다.소처럼 버티고, 승리하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칼럼 | 매일경기 | 2021-01-11 15:34

ㅣ김영희의 미술세계ㅣ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황소>는 이중섭(1916-1956)이 1953년 무렵에 유채 물감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황소의 머리가 도전적인 형세로 표현되어 있다. 강렬한 붉은색을 배경으로 삼은 황소가 그 몸을 비스듬히 하며, 고개를 들어 올린다. 그리고는 입을 크게 벌려 웅대한 소리를 내뿜는다.유연한 곡선으로 물든 노을은 호쾌한 붓놀림으로 그려진 황소를 탁월하게 뒷받침해준다, 황소의 코와 입가는 배경과 같이,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다. 소의 찰나를 순발력 있게 잡아낸 이중섭의 솜씨가 대단하다. 그 시절에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이중섭 특유의 과감하고 거친 붓질, 즉 굵은 획과 선을 쓰고 단순하고 선명한 채색으로 표현하였다. 그림을 마주하는 이들이 한번 보면, 뇌리에서 잊히지 않을 만큼 강력한 인상을 준다. 옆으로 향한 목 근육은 두껍고 튼튼하여 황소의 저력이 한껏 돋보인다. 독자적인 화풍을 정점으로 끌어올린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으리라.황소는 큰 수소를 말한다. 황에는 누렇다는 뜻도 있지만, ‘크다’라는 뜻도 아울러 담겨있다. 이러한 황소는 어릴 때는 땅을 고르며, 늙어서는 먹이가 되어 사람들을 돕고 희생하는 동물로서 먼 옛날부터 인간과 함께 살아왔다. 이중섭은 어렸을 적부터 소를 관찰하면서 자랐는데, 온종일 소를 바라보다가 소도둑으로 오해를 살 만큼 소에게 흠뻑 빠져 있었다. 그는 끊임없는 스케치를 통해 소의 형태에 통달하게 되었고, 남다른 시선을 가지고 소를 새롭게 해석하고자 시도했다. 이 그림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외양간의 순박한 소를 표현한 일반적인 작품과 차별화되는 이유는 이중섭만의 독특한 시각이 확연하게 드러나 있을 뿐 아니라, 작가 본인의 감정이 화폭에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황소>는 그가 가족과 헤어져 있던 시기에 그려졌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재회하여 단란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있다. 쩌렁쩌렁한 소리를 발하는 황소의 강건한 기상을 통해, 세파에 지쳐가는 자신이 굳세게 버텨나갈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다짐했으리라. 대지의 빛깔과도 같은 소는 우직하고 성실하다. 이중섭 평생의 소재로서 자리매김한 소는, 온순하고 인내심이 강한 한국적 정서와 향토성을 드러낸다. 때론 거친 소의 성질을 통해 강인한 민족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소의 큰 눈을 들여다보곤 그저 행복하다고 말했다던 이중섭. 민족화가가 되고 싶다며 늘 이야기 했다던 이중섭은, 그 바람대로 20세기 대한민국의 회화사에 불멸로 남았다.거실의 눈에 잘 띄는 장소에 황소를 걸어본다. 그림 속 황소는 뛰어난 표현력 때문인지 늠름하고 잘 생겼다. 우렁찬 포효를 내뿜어 집안의 액운을 다 몰아낼 수 있을 듯하다. 진한 감흥과 강한 카리스마가 빚어내는 매력이 이채롭다. 붉은색을 배경으로 삼은 누렁이 황소와 함께 신축년을 맞이하는 것은 어떨까. 2021년 한 해가 즐거우리라.

칼럼 | 매일경기 | 2021-01-11 15:32

ㅣ최제영 大記者 칼럼ㅣ최제영 大記者2021년 辛丑年 새해가 밝았다. 2020년은 너무나 지치고 힘들었다. 고통의 연속이었다. 정치도 경제도 부동산 정책도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느꼈을 거라 생각된다.필자가 아는 전국의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생활하시던 다수의 어르신들도 지난해에 세상을 떠났다.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몇 년은 더 살수 있었을 분들이었다.장례식도 제대로 치루지 못하고 부모님과 이별한 자식들도 많았다. 헤어짐도 크나큰 슬픔인데 제대로 작별인사 조차 여의치 않았다니 이게 얼마나 큰 아픔인가.2021년 2월에는 백신도 들어온다고 한다. 국내 치료제 개발도 한창 진행 중이라고 한다. 당장 마스크를 벗지는 못하더라도 코로나19의 공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辛丑年인 올해는 '하얀 소띠' 해라고 한다. 소는 대게 누렇거나 검은 편인데 올해 하얀 소라고 한다. 하얀 소를 검색하니, 여유와 평화가 넘쳐난다고 한다. 성질이 유순하여 참을성도 많다고 한다. 땅 속에서 씨앗이 싹터 봄을 기다리는 모양과도 비슷하다. 끈기 있고 묵묵한 성향으로 승부욕이 강하다고 한다. 辛丑年이 그런 해 이길 기대하고 싶다.화를 잘 내지 않는 성격이지만 한번 화가 나면 아무도 못 말리는 기질도 있다고 한다.어두운 터널이 지나길 바라고 있다. 그래서 바뀌는 금융 정책을 살짝 소개해 볼까 한다. 1월18일부터 '소상공인 2차 금융지원 프로그램'의 보증료와 금리가 인하된다. 식당, 카페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피해를 입은 집합제한업종 임차 소상공인에게는 최대 1000만원까지 추가 대출이 가능한 특별 프로그램도 개시된다.7월에는 의료 이용량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화 하는 내용의 '4세대 실손 의료보험'이 출시된다.의료 쇼핑으로 전체 보험료를 올리는 주범을 잡는 동시에 의료 이용이 적은 소비자들에게는 보험료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다.현재 운영 중인 '소상공인 2차 금융지원 프로그램'의 보증료율과 금리가 인하된다. 이에 따라 1월18일부터 금리는 연 2.44~4.99%에서 2.44~3.99%로 낮아질 거로 예상하고 있다.공모주 일반 청약자 배정 물량이 현행 20%에서 최대 30% 수준까지 확대된다. 국민들은 지금 무척이나 지쳐있다. 그래도 꽃피는 춘 3월을 기대하고 싶다. 기대만큼 실망이 크더라도 말이다.

칼럼 | 매일경기 | 2021-01-04 16:35

ㅣ신현승 칼럼ㅣ신현승 자유기고가독자들께서는 이번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는지 모르겠다. 추운 겨울,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한 연말연시다.사실 크리스마스가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다. 보통은 진짜 생일이 아니라 탄생을 기념하는 날짜라고 하는데, 그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인류의 반 이상이 이 날을 종교와 상관없이 기념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보다는 산타클로스와 루돌프쪽이 더 많이 활동하는 느낌이며, 산타클로스와 루돌프는 지구를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돌며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데, 올해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선물을 나누어줘야 할 상황이 아닌가 싶다.지금 세계는 총성만 없을 뿐이지 세계대전에 필적할 만큼 혼란한 상황이다. 코로나 19에 의한 팬데믹 상황은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이 전 지구적인 이슈이며, 현재 대한민국 언론에서는 그 언급을 극히 꺼리고 있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이슈는 마치 폭탄의 신관처럼 그 폭발력을 감춘 채로 잠복되어 있다. 조금만 관심이 있는 독자 분이라면, 무엇인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눈치 채고 계시겠지만 말이다.이런 상황에서 그 어떤 모습의 산타클로스라도 좋으니 우리에게 좋은 소식을 가져왔으면 하는 생각은 그 누구라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바라는 바였을 것이다.그러나 크리스마스가 다 지나도록 우리에게는 별다른 선물이 없다. 우리가 착한 어린이가 아니어서일까? 다른 나라의 국민들은 벌써 백신접종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는 백신을 전혀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만 들려온다. 백신 하나 제대로 확보하지도 못한 나라가, 오히려 국민들에게 3단계니 뭐니 하면서, 국민들을 더더욱 통제하려고만 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통제. 좋다. 그것이 공익을 위한 것이고, 필요한 것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마땅히 해야 했을 일을 하지 못한 채, 국민들에게 어떤 의무적 행동만을 강요한다면 과연 그것이 계속 실효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과연, 현 정부와 정권이 국민의 행복 증진에 제대로 이바지하고 있는 지 묻고 싶다. 코로나 팬데믹이 있기 이전에도 이미 국가의 실업률, 출산율, 행복지수는 바닥을 기어다닌 지 오래다. 중국에 강력하게 항의하겠다던 미세먼지에 대한 이야기는 무슨 실효성을 가진 항의를 했는지 기억에 없으며, 여전히 우리 하늘은 뿌옇다.여기서 동심 파괴의 말씀을 드리자면, 우리 가정의 산타클로스는 하얀 두루뭉치 같은 수염을 단 핀란드 할아버지가 아니라 사실은 파르라니 까칠까칠한 수염을 가진 젊은 우리 아빠다. 우리는 그 아빠가 그저 그 자리를 잘 지켜주며, 최소한의 경제력을 유지해주고, 안전과 행복을 보장해주길 바랄 뿐이다. 남의 집 아빠처럼 부자이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남의 집 아빠처럼 유명인이 아니어도 별 불만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 아빠이기 때문이다.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의 산타클로스는 우리 정부다. 우리 사회도 우리 정부가 세계 최고의 우수한 만능 정부이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최소한 국민들의 권익과 안전을 보장해주는 정부이길 바라는 것 뿐이다. 그런데, 지금 들려오는 백신 확보 0의 정부라는 것. 다른 나라들은 이미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으며, 내년 상반기에는 단체면역 수준에 도달할 것인데, 우리 정부는 그 시점까지 약속받은 백신 물량이 전혀 없다는 것. 이것을 과연 무엇으로 변명해줄 수 있다는 말인가?이는 산타클로스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가장 노릇을 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일 뿐이다.정신과나 심리학과에서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다보면, 한 개인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도, 가장 큰 트라우마를 주는 존재도 다름 아닌 그 집의 ‘아빠’인 경우가 많다.지금의 우리 정부는 우리 국민에게 어떤 아빠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

칼럼 | 매일경기 | 2021-01-04 16:32

ㅣ서영숙의 미술세상ㅣ서영숙 안산환경미술 협회 회장누구나 살며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요즘처럼 말이다.또한, 어느 사람에게는 내면의 고통이 있을 수도 있고 때론 육체적 장애일 수도 있다.이러한 장벽을 넘어서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피폐해진다. 특히 예술에서는 늘 그 벽과 끊임없는 싸움을 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마티스는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준다.야수파(Fauvism)의 대표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는 스물한 살이던 1890년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평생 근면 성실하게 작업에 매진했다. 여행하거나 투병 생활 중에도 붓을 놓지 않은 그는 ‘색채의 마술사’로 불릴 만큼 색채의 물질성을 강조함으로써 20세기 미술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평탄할 것만 같던 그의 삶은 1941년 십이지장암으로 수술을 받은 후 죽을 때까지 침대와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다.그는 수술을 받은 후, 이젤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통스러워 다시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마티스는 좌절하지 않고 그의 유명한 컷아웃 기법(종이 오리기)으로 작업하기 시작했다.컷아웃 기법은 앙리 마티스의 색과 형, 색채와 드로잉 사이의 영원한 갈등에 대한 해결책이었다. 그가 자신의 다른 작품들보다 컷아웃을 통해 ‘훨씬 더 높은 완성도’를 성취할 수 있었다고 하니 이 종이 오리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마티스는 지중해의 기후와 풍광 그리고 그 바다가 연출하는 빛과 색깔을 너무나 사랑했다. 그는 어디에서 작품 활동을 하거나 어떤 곳을 여행할 때도 오직 지중해를 향한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끊임없이 니스를 중심으로 하는 지중해로 돌아오곤 했다.지중해는 마티스에게 일종의 종교와도 같았다.깊이와 한계를 알 수 없고 우주를 통 큰 하나의 유기체로 만드는 바다, 지중해의 영원한 생명력은 어디에서 오는 무엇일까? 끊임없이 솟구치며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예술혼의 원천.마티스의 평생은 그가 사랑하는 지중해의 아름다움과 지중해가 그에게 함축하는 의미를 형상화하려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그가 세상을 하직하기 2년 전 지중해의 아름다운 푸르름을 닮은 <푸른 누드 > 연작이 완성되었다. 오린 종이 위에 과슈를 채색해서 미리 준비된 흰색 종이 위에 콜라주를 하듯 붙이는 작품이다.작품 속의 인체 형상은 극도로 단순해지고, 채색도 오로지 파란색으로 제한되어 간결미를 높였다.캔버스를 가득 채운 인물은 약간 고개를 숙이며 한 손은 머리 뒤로 넘기고 다른 손은 늘어뜨려 꼬아서 앉은 다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푸른 몸의 인물은 굉장히 단순해 보이지만 관절 사이 가위로 잘린 공간으로 인해 운동감이 부여되었다. 그래서 푸른 뭉텅이처럼 보였던 인물이 가위질 된 공간을 따라 움직이는 것 같다.실제로 앙리 마티스는 하나의 컷아웃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만족스러운 자세를 찾아냈다. 몇 번의 가위질로 금방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공간적 감각을 캔버스 위에 구현한 것이다. 즉, 앙리 마티스는 조각가가 석재로 작품을 만들어내듯 가위를 들고 색채를 오려내어 만든 작품이 푸른 누드이다마티스는 진짜처럼 보이는 그림에는 흥미가 없었다. 눈으로만 보는 그림이 아니라 풍부한 색을 통해 마음으로 보는 그림이 되길 바랐다.어느 작가들이 공허와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마티스는 삶의 의미를 찾고 평생 행복감과 기쁨을 추구해갔다. 자아와 세상의 조화 속에서 즐거움으로 충만한 그림을 제작하였던 작가로 말년으로 갈수록 좋지 못한 건강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보는 시각은 변함없이 충만 된 행복과 기쁨으로 낙관적이었던 최고의 멋진 작가였다.

칼럼 | 매일경기 | 2021-01-04 16:31

ㅣ시민기자칼럼ㅣ신도성 시민기자지난 11일 오후 3시 40분, 은행 일처리를 하러 00은행 00지점에 갔는데 밖에 ATM기기만 있고 은행입구는 셔터가 내려졌다. 그날은 금요일이고, 마감시간이 아직 남았는데 의아하게 생각하며 부착된 안내문을 보니 12월 8일부터 28일까지 3주간 금융기관의 문을 30분 늦게 열고 30분 일찍 닫는다고 게시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적용에 따라서 업무시간을 단축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한 것이 은행 업무단축의 연관과 어떤 이유로 연계되는지 명시되지 않아서 은행의 업무시간 단축을 모르고 방문했던 사람들 몇 분은 기다리다 발을 돌리면서 투덜거렸다. 나는 우선 인터폰으로 호출했고 한참 후에서야 직원이 응대하기에 사정을 얘기하고 업무처리를 요청하였다. 처음에는 다음 주에 다시 은행을 방문하면 된다고 마치 남 얘기하듯이 완강하게 거절하던 직원의 태도는 그리 친절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참고 간곡하게 요청하는 나의 태도에 직원은 통장을 받아들고서 들어가서 업무를 해결해 주었다.일련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는 원하는 업무를 처리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은행에 대해서 고맙다는 생각보다 아쉬운 마음이 앞섰다. ‘금융산업 사용자 협의회’와 ‘전국 금융산업 노동조합’이 무슨 권한으로 은행을 키워준 고객을 이처럼 무시하고 은행의 업무시간을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가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평소에는 은행이 예금해달라고 요청하거나 아니면 대출해가라는 문자들을 시도 때도 없이 보내면서도 정작 업무시간 단축과 같이 고객에게 반드시 필요한 안내문자는 보내지도 않았다. 코로나 펜데믹과 은행의 업무시간 단축은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은행은 사전 통보도 없이 업무시간을 단축하면서 은행과 직원을 먹여 살리는 고객과 자영업자는 왜 더 힘들어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코로나 펜데믹 불황속을 겪는 어느 중소기업에서 출근과 퇴근시간을 줄여야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회사직원이 얼마나 있겠는가? 이쯤 된다면 은행과 은행직원 노조와 같은 강자의 횡포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코로나의 어려운 시기를 깜깜한 터널을 지난다고 국민 모두가 참고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는 서민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정부에서 노력하고 있으니 코로나의 빠른 종식을 위해서 우리가 불편하더라도 참고 협조해야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금년 초부터 어려움을 참고 견뎌왔다.은행이 해오던 공적 업무가 줄여들고 수수료를 챙기는 수익사업에만 치중하는 태도에 대한 불만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솔직히 표현하면 불만의 정도가 점점 더해서 천정을 뚫더니 하늘을 찌를 기세이다. 대표적인 예로 연말마다 푸짐하게 나눠주던 새해 달력과 가계부도 배부하는 숫자가 줄어서 귀하신 몸이 된 은행달력을 구하려면 종종 허탕을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차라리 은행보다는 새마을금고와 지역신협과 같은 제2금융기관에는 비교적 여유가 있어 보인다. 은행에서 발행하는 예금거래내역서 서류도 본인의 거래내역인데 고객은 은행에 적지 않은 수수료를 내야만 한다. 모든 공적서비스조차 대부분 수수료를 부과하고 수수료 부고하는 비중을 점차 늘리는 은행은 공적업무를 비례해서 줄이고 있다. 은행이 어려울 때마다 혈세로 조성된 천문학적 숫자의 공적자금을 지원했던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러한 은행의 응대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은행에는 청원경찰이 배치되어 있어서 출입하는 고객이 마스크 썼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미 창구들도 칸막이 설치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업시간을 왜 단축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특별히 은행만 다른 장소보다 코로나 감염에 취약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돈이 코로나를 전염시키는 매개체가 되어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시킨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다. 중요한 사실은 운영시간 단축과 같은 불편이 있다면 사전에 문자로 고객에게 알려주어야 돈보다 소중한 시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코로나의 조기 종식을 위하여 국민의 협조를 구한다는 자세가 절실하다.

칼럼 | 매일경기 | 2020-12-21 15:21

ㅣ최제영 大記者 칼럼ㅣ조두순이 살고 있는 와동에 돈 냄새만 좇는 일부 유튜버들로 주민들이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지금은 어느 정도 평정을 찾았지만 '언제 또다시 나타날까' 하는 마음에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있다.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일부 유튜버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필자도 2~3일 동안 현지 취재를 하면서 이들의 도를 넘는 행위를 직접 목격했다.일부는 조두순 집 앞에서 "죽여버린다"를 외치며 고성을 질러댔다.이에 따른 민원도 폭주했다. 조두순을 옹호하자는 얘기는 아니다.소란을 피우는 행위 등으로 입건된 인원은 10여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에는 유튜버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한다. 안산시도 유튜버들로 골머리를 앓았다.시는 조두순 거주지 관련 영상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무분별한 방송으로 사생활 침해 등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조두순을 흥밋거리나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는 유튜버는 안산을 절대 오지 말라고 질타했다.이들이 선정성과 폭력성을 표출하는 이유는 '조회 수 올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다.유튜버의 무리한 방송을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는 구독자 관심을 끌기 위해 허위·조작 영상을 만들기도 한다.지난 7월 구독자 130만 명이 넘었던 유튜버는 프랜차이즈 음식을 배달원이 훔쳐 먹었다는 내용의 동영상을 올렸으나 거짓임이 들통났다.해당 회사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혼탁해진 유튜버 시장의 정화를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일부에서는 국민 83%가 유튜브를 본다는 통계가 있는데 정작 비윤리적 콘텐츠에 대한 제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 보니 피해는 시청자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유튜브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회사를 사업자로 규정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불건전 콘텐츠를 스스로 정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안산시민을 두 번 울리는 악질 유튜버는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길 바란다. 강력하게 경고한다. 몰지각한 유튜버는 절대로 안산으로 올 생각을 하지 말라.

칼럼 | 매일경기 | 2020-12-21 15:20

ㅣ신현승 칼럼ㅣ신현승 자유기고가 한국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성격 급하기로 유명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 빨리’라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닐뿐더러, 성질 급한 한국인들끼리도 거의 습관적으로 ‘빨리 빨리, 8282’를 남발하며 재촉을 한다. 대체 어떻게 이런 민족이 반 반년 동안 한반도에만 정착해서 살 수 있었는지 미스테리할 정도로 급하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보면, 바로 그 역사 때문에 한국 민족이 이렇게 성질이 급해졌다고도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천년 이상 중국의 눈치를 봐야 했던 역사, 스스로 강화하고 옭아매었던 신분제의 폐해, 일본에 의한 지배 등등, 한국인들의 ‘급한 성격’에는 이런 어려운 상황에 대처해서 살아남으려고 했던 한국인들의 생존 전략이 작용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빨리 빨리’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말이다.그리고, 현대에 와서 이런 급한 성격은 대한민국을 역사에 손꼽을 산업화, 경제발전, 한강의 기적을 성공시키는 데에 일조를 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IT산업이나 서비스는 빠른 것으로 유명한데, 이것 역시 그 국가의 구성원들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주문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배달되어 오는 배달음식 문화, 택배 문화도 이런 국민적 성향에 기초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그러나, 이것에 의한 단점도 만만치 않으니 지나친 성과 위주의 그리고 배려심이 없는 사회 풍조를 야기하기도 한다.우리 사회는 한 개인의 인생을 정형화해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관리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그 개개인의 인생을 살펴보면, 한 사람의 인생 안에서도 수많은 굴곡과 오르내림이 있게 마련이다. 그 개개인의 인생 속에서 빠르게 성취하여 안정세를 취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성공한 사람이 1,2명이면 탈락한 사람이 8,9명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눈부신 경제발전 속도가 1990년대 이후 둔화되면서, 어느새 인가 한국은 일하기 힘든 사회가 되어 가고 있고, 그에 따라 성공과 안정의 궤도에서 이탈하고 탈락하는 사람들의 수가 부쩍 늘어나게 되었다. 예전 같은 고속성장의 시대에는 이런 탈락자들을 되돌아볼 여지가 없었을지 몰라도, 지금 시대에는 이런 이탈자, 탈락자들에 대한 정책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게 되었다. 몇 년전부터 ‘헬조선, 노오력’ 등의 유행어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도 이러한 풍조를 대변하는 것이라 하겠다. ‘라떼는 말이야’하는 자기중심적 경험담, 무용담도 젊은이들에게는 비웃음만 살 뿐이다. 그도 그러할 것이 지금의 기성세대, 특히 IMF 이전의 세대들은 취업이나 스펙을 쌓는 일에서 지금 세대들만큼의 어려움을 강요받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대졸자들은 어지간히 공부를 안 해도 취업할 만 했으며, 따로 어떤 스펙을 쌓는다는 개념도 희박했던 시대였다. 반면에, 지금 시대는 취업을 제 때에 못해서 궤도에서 이탈해 버리거나, 중간에 실패를 겪고 퇴직, 폐업을 하게 되는 경우, 다시 제도권에 올라온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원래 삶이란 정글의 생존법칙과 같은 것이기는 하지만, 최근의 대한민국은 그 정도가 지나치게 가혹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이는 고학력자들이 넘쳐나는 상황, ‘너도 나도 대학부터 보내는 풍조’와 무관하지 않지만, 이를 어찌 국민들의 성향을 탓하겠는가? 이것은 대학을 줄여야 했을 1990년대-2000년대에 오히려 우후죽순식으로 대학을 늘려버린 대한민국 정책의 실패사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입시지옥을 없애기 위해 문을 넓혀 놓으니, 이제 와서는 그 고학력자들을 사회가 노동인구로써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이제 우리 사회는 기다림의 미학을 보여줄 수 있는 성숙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오르지 못한 자들, 떨어진 자들을 위해 기다려 줄 줄 아는 사회, 다시 한 번 힘차게 뛰어오르는 늦깎이를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단지 복지적 개념으로의 패자부활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사회는 중산층과 서민층이 많이 붕괴되어 있고 피폐해져 있다. 지나친 경쟁에 의해 도태된 자들에 대한 단순한 배려심이라기 보다는 그들을 다시 건강한 사회 구성원의 궤도에 올려놓음으로써, 사회적, 경제적인 사회의 중추를 재건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늦깎이들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써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실패한 과거의 정책. 이제는 그 실책을 만회해야 하는 시기다. 이 코로나가 물러가게 되는 것과 발맞춰서 말이다.

칼럼 | 매일경기 | 2020-12-21 15:19

ㅣ김영희의 미술세계ㅣ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애국가의 한 소절이다. 이렇듯 소나무는 예부터 한민족이 귀히 여겼던 나무였다. 세한삼우(歲寒三友), 사우(四友)의 일원으로 분류하여 문인들에게 찬미의 대상이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소나무는 십장생의 하나로 꼽히는 것은 물론, ‘송수천년’이라 하여 천 년을 사는 나무로 알려져 사람들은 앞다투어 소나무를 그려내고 완상하기도 하였다.그리고 사직단은 왕조의 복락을 기원하는 공간이다. 토지의 신인 사(社)와 오곡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낸 곳이다. 민생의 안정을 바탕으로 국가를 통치하려는 민본주의적 이념이 드러나는 장소다. 결국 사직단에 심어진 노송이란 정치철학적·한국사적으로 예사롭지 않은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선의 <사직노송도>는 바로 그러한 대상을 화폭에 담아낸 그림이다.<사직노송도>는 일체의 다른 배경을 배격하고 소나무 한그루만을 다루었다. 한편 노송에 한해서는 가지를 떠받들고 있는 지지대까지 그려내어 노송의 묘사에 한껏 공을 들였다. 이 노송은 전형적인 반송의 모습이다. 마치 한 마리의 용처럼 구불구불 휘어 돌아 뒤틀리고 제멋대로 만들어진 수세에서, 수많은 시간 속에 온갖 풍상을 꿋꿋하게 견딘 소나무의 연륜을 느끼게 한다. 모양새는 줄기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이 흐르고 땅을 스치며 다시 솟아오르는 형세를 취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오랜 세월을 표상하는 것처럼 옆으로 유구하게 뻗어나간다. 나무의 줄기와 가지는 왜곡되어 보이기도 하나, 그 곡선의 흐름은 유연해 보인다. 정선은 받침대에 의지하고 선 소나무를 어떤 생각을 하며 그렸을까? 굳건하게 뿌리 내려 살아온 노송처럼, 조선왕조도 굳건하고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그린 것이 아닐까 한다. 세 갈래로 뻗어 있는 노송은 왼쪽 가지가 부러졌는데, 표면은 상처가 있지만 속은 끈질기게 살아있다. 그 중, 곁가지에 새롭게 움튼 싹을 보고 있노라면 경이로움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이렇게 약동하는 생명력과 더불어, 소나무의 대표적인 속성으로 꼽혔던 것은 벽사력이 있는데, 재액과 환난을 마주하여 이를 헤쳐나가고자 했던 세인의 소망이 투영된 것이다. 국가의 생존과 번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수많은 세월 풍상에 노출되면서도 상록을 유지하고 굽어간 노송처럼, 정선은 조선이 전란과 천재지변을 극복하고 단단하게 뿌리내리는 ‘천년사직’이 되기를 염원하면서 이를 그리지 않았을까 싶다.정선은 <사직노송도> 외에도, <노송영지도>와 <노백도>를 남겨 소나무의 강건한 기상을 담아내기도 하였고, 진경산수화에도 소나무를 채워 넣었다. 그 경우에는 <사직노송도>처럼 정밀한 묘사보다는 속필을 활용하여 활달한 인상을 줄 수 있도록 표현했다. 자연의 이치와 생명력을 훌륭하게 포착함은 물론, 자신의 필력과 재주를 보태어 이런 역작을 남겼으니, 과연 화성(畫聖)의 경지에 다다른 이라고 할 만하다.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쓸쓸한 가을날이나 눈보라 치는 날에도.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하지 않는 네 빛. 뒷산 솔숲을 거닐며, 어릴적 동요를 흥얼거려보는 오후다.

칼럼 | 매일경기 | 2020-12-21 15:18

ㅣ최제영 大記者 칼럼ㅣ네이버에서 자살(自殺)을 검색하니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라는 글귀가 나온다. 이어서 '당신은 그 존재만으로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포기하지마세요' 라며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라고 조언을 하고 있다.자살은 '죽음을 초래할 의도를 가지고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요즘은 '자살'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한국기자협회에서도 보도 준칙에서 자살이라 쓰지 말고 '극단적 선택'라는 표현을 사용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필자는 자살이 우리사회에 주는 악영향이 너무나 지대하고 그 전염성이 매우 심각하다는 말을 자주해 왔다. 11년 전에는 대부도에 있는 경기도청소년수련원에서 '자살'이라는 주제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적도 있다.당시는 탤런트 최진실 등 저명인사들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일들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사회 지도층의 자살은 우리 사회에 크나큰 영향을 주고 있다.흔히 '자살전염 현상'이라고도 한다. 우리 몸은 단순하게 나의 개인 것이 아니다. 생명을 공짜로 얻은 것이 아니다는 뜻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종류의 육류를 섭취하며 살아간다. 영양을 보충하고 그에 따른 에너지를 방출한다. 만물의 영장이기에 가능하다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살아 숨 쉬는 동물들은 인간을 위해 살다가 희생되고 마는 것이다.자살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혹자들은 '오죽하면 목숨을 버릴까' 하고 이해하려는 부류도 있다. 그래도 그건 아니다. 우리나라는 OECD에서 자살 빈도가 높다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인터넷에서 자살 방법을 알려주고 때로는 동지를 찾는다고도 한다. 기가 말 힐 노릇이다.며칠전 한국사진작가협회 안산지부장 정관균씨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 또한번 놀랐다. 개인적으로 친분은 없었지만 안타까운 소식일 수 밖에 없었다.예고없는 가장의 죽음에 통곡하는 그들을 가까이서 보았다. 자신이 떠난 이후 가족이 겪어야 할 아픔을 조금만 생각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억울하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말이다.지금도 대학병원에는 몹쓸 병마와 힘겹게 싸우는 환자들이 무척이나 많다. 하루라도 더 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 가족도 그 아픔을 간접적으로 겪고 있다.필자의 어머니도 암으로 투병하시다가 16년 전에 돌아가셨다.어머니는 아픔의 고통 속에서도 당신이 살아 있음에 늘 감사함을 느끼셨다. 병실에서 막내딸과 며칠을 보내면서 작별의 눈물을 흘리셨다. 뜨거운 눈물이었다고 동생은 전했다.생명은 내 개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순간도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칼럼 | 매일경기 | 2020-12-14 15:09

ㅣ신현승 칼럼ㅣ신현승 자유기고가지구에는 다양한 기후와 날씨가 존재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찌는 듯한 열대 기후속에 있는 지역, 타는 듯한 갈증만이 존재하는 사막 기후 지역, 모든 것이 얼어붙는 한대 지역 등등이 동시에 지구상에서 펼쳐져 있다. 어느 노래처럼 ‘뚜렷한 사계절이 있는’ 우리 나라는 축복인지 핸디캡인지 모르겠지만, 계절 자체가 꽤나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그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은 지구상의 대부분의 날씨를 비슷하게나마 느낄 수 있는 행운권(?)에 당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최고의 행운권은 역시나 눈(雪)이 아닐까 한다.한 겨울에 내리는 눈. 그 중에서도 함박눈은 그야말로 일부 선택받는 국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운권이라 하겠다. 새삼 빡빡한 도시 생활로 인해, 또는 자동차 운행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이 눈을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잠깐만이라도 현실적 걱정을 내려놓고 낭만적인 사유의 세계로 빠져보자.예로부터 눈은 문학에서 정화(淨化)의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가까운 시대의 김수영 시인의 눈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교양이 있는 분이라면, 이 말에 동의하는 데에 그다지 어려움이 없으리라 본다.그렇지만, 필자는 단순히 눈을 정화의 의미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눈은 어찌보면 온갖 더러운 것을 잠시 그 하얀 장막으로 가리는 임시적인 방편일 뿐이며, 그 안의 더러운 것들은 눈이 녹아버리면, 더더욱 더럽고 지저분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 필자는 문학도일 때도 단순하게 눈을 정화의 심상으로 보는 것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았다. 덮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상황의 해결이나 정화라기보다는 오히려 은닉(隱匿)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저 하얗게 내린 눈이라면 1차적으로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잠시 낭만적인 사유를 하자고 해놓고는 어째 가장 비낭만적으로 이야기하게 된 것 같고, 왜인지 하얗고 예쁜 눈을 좋지 않게 말한 것 같아 조금 미안하기는 하지만, 사실 눈의 정수는 하얗고 예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꺼리는 모습인, 그 녹음(融解)과 뒤섞임에 의한 그 지저분함에 있다. 하얗게 내린 눈은 썩어야 할 지난 찌꺼기들과 더러운 것들을 단순히 감추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다. 그 눈은 그 고결하고 순결한 하얀 결정을 녹이면서 온갖 찌꺼기들과 더러운 것들과 한데 뒤섞인다. 그리고, 그들에게 수분을 제공하며, 미래의 영양분이 될 것들, 그리고 내년의 씨앗이 될 것들과 한데 뒤섞어 그들에게 생명을 제공하는 것이다.그렇다. 한 마디로 하자면, 예쁜 함박눈은 그 자체로 예쁘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주지만 그 예쁘고 고결한 모양보다 더 중요한 역할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눈 속에서 예쁘지 않은 모양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하얗고 아름다운 눈 자체를 단순하게 정화의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눈 심상의 정수는 그 모양의 일그러짐, 녹음, 더러움과 한 데 섞이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단순한 정화라기보다는 자기희생에 따른 생명부여로써의 정화의 의미인 것이다.올 한 해, 다시 상기시켜주지 않아도, 우리 사회와 지구촌은 너무나 아픈 일들을 많이 겪었다. 대체 어떻게 된 사연인지도 모른채 공포에 떨어야 했으며, 지금도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분명 이 사회의 수많은 상처들과 치부들은 지금도 그 해결점을 모른 채로 노출되어 있다. 작금의 사태로 인해 거리로 내몰리는 수많은 실업자들과 폐업자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추운 거리를 바라보며 하염없는 한숨을 내쉬고 있다.이 사회와 정부는 과연 그들을 하얗게 덮어 그 상처를 치유하고, 모든 더러움과 한 데 뒤섞일 준비가 되어 있는 지 나는 묻고 싶다. 그리고, 이 추운 시절이 지나갔을 때, 그들에게 새로운 삶과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지 묻고 싶다.함박눈이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

칼럼 | 매일경기 | 2020-12-14 15:07

ㅣ서영숙의 미술세상ㅣ서영숙 안산환경미술 협회 회장프랑스의 표현주의 화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은 러시아에서 태어나 파리에 진출한 후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불린다.유대인인 그는 러시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그는 시골의 미술 학교를 거쳐 페테르부르크 왕실 미술 학교를 졸업하고 1310년(23세) 파리에 유학,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공부하면서 피카소와 입체파의 영향을 받는다.선명한 색채로 사람과 동물을 섞어 환상적이며 신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 작품은 러시아의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난 샤갈이 파리에서 입체파 분석방법을 공부하면서 고향마을에 대한 추억을 그린 작품이다.러시아와 프랑스는 멀리 떨어져 있었고 샤갈은 어린 시절에 살았던 러시아 마을을 항상 그리워했다. 그래서 마을에 대한 그리움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나와 마을’이다.이 작품에는 샤갈이 살았던 마을에 대한 추억들이 들어있다.그림의 오른쪽에 있는 초록색 얼굴은 바로 샤갈의 얼굴이다. 러시아 농부의 모자를 쓰고 있고십자가 목걸이도 차고 있다. 아마도 샤갈의 종교는 기독교인가 보다.그림의 왼쪽에는 염소 얼굴이 있다. 샤갈과 염소는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다정다감한 친구 같은 모습으로, 염소의 얼굴과 샤갈의 얼굴은 동그라미로 이어져 있기도 하다. 그리고 염소도 샤갈과 같이 십자가 목걸이를 차고 있다.샤갈의 마을에서 농부와 동물은 가족 같은 관계였다. 지금의 반려동물처럼 말이다. 염소의 얼굴 안에는 작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소녀가 염소의 젖을 짜고 있다. 지금 우리는 주로 우유를 먹지만 샤갈의 마을에서는 주로 염소젖을 먹었나 보다.그림의 아랫부분엔 샤갈이 화려한 나무를 잡고 있다. 이 나무는 기독교의 성서에나오는 나무 또는 ‘생명의 나무’라고도 한다.그림의 윗부분에는 집들이 그려져 있다. 샤갈이 살았던 ‘비테프스크’ 마을을 동화처럼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그렸다.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그려져 있다. 남자는 낫을 든 농부의 모습으로 보인다.치마를 입은 여자는 거꾸로 그려져 있다.샤갈의 이 작품은 여러 개의 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초록색, 파란색, 빨간색, 흰색, 노란색 등 선명한 색으로 표현했다. 환상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샤갈은 여러 가지 색을 사용해 그림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샤갈은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린다.환상적인 색깔의 동화 같은 그림 ‘나와 마을’샤갈은 어린 시절에 살았던 마을을 많이 사랑했나 보다. 쉽게 돌아갈 수 없어 더 그리웠을 샤갈의 고향이 작품 속에 남아 있다.기쁠 때나 슬플 때나 찾게 되는 고향과 그리운 부모님, 날씨가 쌀쌀해질수록 어릴 적 생활이 가끔 떠오르곤 한다. 어서 이 시절이 지나가 모든 지구의 사람들이 그리운 고향을 자유롭게 찾아갈 수 있게 되길 바라본다.

칼럼 | 매일경기 | 2020-12-14 1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