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물빛의 율동 - 이인문의 <총석정>
푸른 물빛의 율동 - 이인문의 <총석정>
  • 매일경기
  • 승인 2021.08.0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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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김영희 미술세계ㅣ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조선 시대의 선비들은 사랑방에 길게 누워, 화가들이 묘사한 전국 각지의 산수와 명승지 그림을 걸어두고 감상했다. 이를 통해서 자연을 즐겼다. 기암괴석을 자랑하는 금강산을 부지런히 오르거나, 늙은 말 한 마리를 타고 소요하거나,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탄성을 내지르는 유람객이 되어 자연에 몰입하곤 했다. 이를 두고 ‘와유’라 한다. 오늘같이 찌는 듯한 무더운 여름날, 이인문(1745-1821)이 그린 <총석정>을 거실에서 와유하며 감상하니 더없이 시원한 바닷가 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다.

총석정은 강원도 총석고개 마루에 세워진 누각을 이르는 말이다. 빽빽하게 솟은 돌기둥들, 즉 총석 위에 누각이 건설되어 이런 이름을 받았다.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육모의 돌탑들이 마치 옥을 깎아놓은 듯한 형상과 같다고 알려졌다.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 네 군데인데 신라사선이라 불리는 네 명의 화랑이 유람하였다 하여 사선봉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자연의 장엄한 기상이 드러남은 물론, 동해의 비바람에 깎이고 다듬어진 경관이 빼어난 총석정은 여러 시화의 소재가 되었다. 조선 시대 선조 대의 문인인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총석정에 대해 이렇게 읊었다.

‘금란굴 돌아들어 총석정 올라가니, 백옥루 남은 기둥 다만 넷이 서 있구나. 공수의 솜씨인가 귀신이 도끼로 다듬은 것인가. 여섯 개의 면은 무엇을 본떴단 말인가?’

시문 외에도 조선 시대 화단을 주름잡았던 정선, 김홍도, 허필, 이재관, 김하종 등 많은 이들이 총석정을 즐겨 그렸다. 이러한 사례로 보아 총석정이 관동팔경 중 으뜸임을 능히 알 만하다.

조선 후기의 산수화가로 잘 알려진 유춘 이인문은 <총석정>을 그리면서, 정선과 심사정의 화법을 조화롭게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돌기둥을 내려 그은 강인한 수직 표현, 둔덕에 붓을 눕혀 찍은 미점 처리 등은 정선의 영향이 보이고, 자유롭게 넘실대는 파도의 모습은 심사정의 영향으로 보인다. 그는 더 나아가 서양화풍까지 곁들여 그림을 한껏 다채롭게 했다. 실로 수작이라 할 수 있다.

화면 왼쪽 아래부터 총석정이 있는 언덕까지 자연스레 옮겨지는 시선은, 바다를 향해 멀리 수평선까지 확장된다. 이러한 화면 구성은 공간감을 조성하고 주제를 뚜렷하게 드러낸 것으로, 그만의 독자적인 절기라고 할 수 있다.

곡선에 둘러싸여 중심을 잡는 돌기둥들은 형제인 양 나란히 배치되었고, 먹의 절묘한 농담 변화 속에서 곧게 솟아있다. 화면의 전반적인 푸른 기운과 둔덕 끝 붉은 꽃잎들의 색채 대비는, 자연스레 총석정 누각에 시선이 머물게 만든다. 파도와 하얀 물거품을 끝없이 잉태하고 부서지며 되풀이되는 생명력은 다함이 없이 역동적이다. 동해 바닷물의 푸른 빛 율동은 신선하기만 하다.

바닷가 바람을 들이키며 총석정에 앉아 파도치는 풍광에 넋을 놓았을 선조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관동팔경 유람 중에 빼놓을 수 없다는 총석정, 그중에서도 제일 비경으로 감탄으로 자아내는 곳으로 지금은 갈 수 없기에 더 궁금하고 아쉽다.

감동을 가슴 속 깊은 곳에 담고 자연의 노래를 그림으로 풀어낸 이인문처럼,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수많은 사람이 즐비하게 그곳을 찾을 것이다. 절묘한 경치와 광활한 동해의 노랫가락에 마음속 예술혼을 키우고 노래 부르며 즐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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